‘세기의 시적 성서’ 또는 ‘상징주의의 경전’이라 일컬어지는 ‘악의 꽃’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1821~1867)는 ‘등대들’이라는 시에서 프랑스 낭만주의 미술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다.
“들라크루아, 악의 천사들이 넘나드는 피의 호수 / 거기엔 언제나 푸른 전나무 숲 그늘 드리워져 있고 / 침울한 하늘 아래, 야릇한 군악소리가 / 베버의 가쁜 한숨처럼 흘러간다”
이렇듯 보들레르는 시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미술비평을 통해서 거의 기사도적인 정열로써 여러 차례 들라크루아에게 열렬한 찬사를 보낸다. 당대 최상의 미술비평가이기도 했던 그는 ‘1846년의 살롱평’에서 들라크루아를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가장 독창적인 화가”라고 찬양하기까지 한다.
‘악의 꽃’(1857)의 출간으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보들레르가 1864년 ‘외젠 들라크루아의 ‘옥중의 타쏘’에 부쳐‘라는 시를 썼다는 사실은 그의 들라크루아 예찬이 일시적 흥분에서가 아니라 매우 본질적인 것이었음을 잘 말해준다.
“누더기 걸친 수척한 옥중의 시인 / 떨리는 발 밑에 원고지를 굴리면서 / 공포에 타오르는 눈으로 재어본다 / 그의 넋이 빠져든 어지러운 층계를”
이렇게 시작되는 시는 보들레르가 들라크루아의 ‘페라라의 안타안나 병원에 있는 타쏘’라는 그림을 보고 지은 것이다. 감옥의 병원에 갇혀 있는 광인들의 짐승 같은 모습에는 전혀 무관심한 채 우울한 표정으로 혼자만의 몽상에 잠겨 있는 예술가, 즉 이탈리아 시인 토르카토 타쏘(1544~1595)의 모습에서 보들레르는 그 자신에 다름 아닌 또 하나의 분신을 보았던 것이다.
‘독기 풍기는 누추한 방’에 갇혀 있는 ‘어두운 꿈을 꾸는 넋’의 시인, 속중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외톨이로서의 고독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천재 예술가의 비극적 운명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통해서 보들레르는 진정한 예술혼의 동류항을 발견했던 것이다.
1863년 들라크루아가 세상을 떠난 뒤, 보들레르가 ‘들라크루아의 생애와 작품’(1864)을 쓴 것은 자신의 미학의 길을 밝혀준 ‘등대’와 같은 존재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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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불문학자인 이가림 교수가 문학 속에 나타난 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 교수는 수준 높은 현대시를 통해 정지용 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프랑스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데도 앞장서 왔습니다. 문학과 미술을 접목한 새로운 해설과 함께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