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문학의 교리를 충실히 반영한 소설 ‘마르트, 어느 창녀의 이야기’(1876) 등을 써서 졸라의 문하생으로 출발했던 조리스-카를 위스망스(1848~1907)는 1884년 특이한 상징주의 소설 ‘거꾸로’를 발표함으로써 데카당적 문학운동의 선두 주자가 된다. 이는 졸라의 입장에서 보면, 용서할 수 없는 커다란 ‘배반’이었으나, 초자연의 세계로 한사코 도망치고자 했던 위스망스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 ‘개종’이었다.
위스망스가 창조한 ‘거꾸로’의 주인공 데 제생트는 파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퐁트네에 자신만의 성을 마련하여 거기서 낮에 잠자고 밤에 깨어나 활동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습관과는 완전히 ‘역행하는’ 생활을 하며 인공적인 것에 대한 자신의 열정에 빠져 든다. 그의 조그만 미술관에는 환상적이고 기이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작품들, 즉 오딜롱 르동, 고야, 모로 등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위스망스는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상징주의 화가인 귀스타브 모로(1826~1898)의 두 작품, 유화 ‘살로메’와 수채화 ‘현신’(1876, 사진)을 보고 느낀 감동을 그대로 소설 ‘거꾸로’ 속에 옮겨놓는다. 화가의 이름과 작품명을 실명으로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스망스가 모로에게 얼마나 깊이 매료되어 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위스망스는 살로메의 모습을 ‘거꾸로’ 속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그녀는 단지 엉덩이를 음탕하게 놀려서 한 늙은이에게서 욕정과 발정의 탄성을 이끌어낸 무희, 젖가슴을 출렁이고 배를 흔들며 허벅지를 떨어대어 왕의 기력을 부수고 의지를 녹여버린 무희였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파괴할 수 없는 음탕함을 상징하는 여신, 불멸의 히스테리의 여신, 자신의 살집을 뻣뻣하게 만들고 근육을 단단하게 하는 경직증에 의해 모든 여자 중에서 선택된 저주받은 미의 여신이 되었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데 제생트, 즉 위스망스는 자신이 꿈꾸어 온 살로메가 모로의 작품 속에서 ‘초인적이고 기이한’ 모습으로 실현되어 있음을 보고 열렬한 예술적 교감에 빠져든다. 모로가 그린 살로메의 그림이야말로, 그 어떤 복음서의 저자도 설명해주지 않은 살로메의 참다운 매력을 구현해 보여준 가장 감동적인 작품으로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1998년 10월부터 1999년 1월까지 파리 그랑팔레 미술관에서 개최된 모로의 100주기 기념 특별 회고전은 이미 알려진 상징주의적 경향의 그림들뿐만 아니라 추상적 화풍의 작품들도 체계 있게 정리하여 보여줌으로써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적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위스망스와 모로, 평생 똑같이 독신자의 삶을 살았던 이 두 예술가는 당대의 유행사조에 휩쓸리지 않은 채, 초자연적 비전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속악한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 외로운 수도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