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 회화에 대해 말할 때면 으레 부셰, 그리고 프라고나르를 들먹이기 나름이다. 그러나 주로 ‘우아한 향연’의 세계를 묘사한 이들과는 달리, 자연과 일상적 현실에 눈을 돌린 또 하나의 빼어난 선구적 화가가 있었으니, 그가 다름 아닌 샤르댕(Jean Baptiste Chardin, 1699~1779)이다. 그는 1728년 ‘식기대’와 ‘가오리’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아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그 후 네덜란드 루벤스파 화가들의 경향을 받아들여 정물화나 서민의 가정생활에서 취재한 정겨운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백과전서’파의 작가인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가 샤르댕의 그림에 이끌린 것은 당시 풍미하던 로코코 미술 양식의 흐름에 매몰되지 않은 채, 사물과 현실의 실재성을 생동감 있게 드러내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디드로가 ‘라모의 조카’ 같은 소설 작품에서 애써 시도했던 외부적 자연의 묘사, 즉 우리들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생명 그 자체의 서정적인 동시에 사실주의적인 묘사 태도와 상통한다고 하겠다.
디드로가 ‘미술비평’이란 새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가 된 것은 그의 친구인 그림(Grimm)이 파리에서 독일의 여러 궁정에 보내고 있던 ‘문예통신’을 위해, 매년 두 번씩 열리는 그림 전시회의 미술평을 쓰게 된 데서 비롯된다. 그는 자신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그림을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게 할 줄 아는 민감한 감수성의 비평가였다.
디드로는 1759년의 ‘살롱평’에서 이렇게 썼다. “샤르댕의 작품은 언제나 자연과 진실 그 자체이다. 만약 목이 마르다면, 여러분은 저 물병에 손을 대게 될 것이다. 그가 그린 복숭아는 먹고 싶어 침을 꿀꺽 삼키게 하고, 손으로 집어 들고 싶게 한다.” 이러한 찬사는 하찮은 사물들에게 뜻 깊은 미적 가치를 부여한 샤르댕 회화에 대해 디드로가 얼마나 크게 감동했는지를 잘 말해 준다.
1769년의 ‘살롱평’에서 디드로는 샤르댕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젊은 화가 한 사람이 그에게 “그림은 색채로 묘사하는 것일까요?”라고 물었을 때, “감정(마음)으로 묘사하는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죽은 아내와 딸을 기리며 그린 ‘식사 전의 기도’(1740, 사진)가 계시적으로 보여 주듯이, 확실히 샤르댕의 그림은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정감어린 인간의 따스한 포에지(poésie, 詩情)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