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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몽파르나스의 방랑기사들

⑦ 콕토와 모딜리아니

“내 귀는 소라껍질 / 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 ‘귀’라는 제목의 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의 이 시는 실은 ‘칸느’ 연작 단시 중 제5번 시이다. 귀와 조개껍질과의 유사점에서 출발하여, 그 조개껍질이 파도소리로 이어지고, 다시 그 파도소리로부터 자연스럽게 귀로 돌아오는 원환적 구성을 이루고 있는 이 짧은 시에서 우리는 콕토의 재기 넘치는 이미지 구사 솜씨를 한껏 맛볼 수 있다.

파리 근교 메종 라피트에서 부유한 가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콕토는 1906년 17세 때 페미나 극장에서 시낭송의 밤을 개최함으로써 조숙한 시인으로 시단에 등장했다. 그는 시인으로서, 소설가로서, 문학비평가로서, 화가로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무슨 일에 매달리든지 콕토는 시인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명명할 때에 그냥 시, 소설, 평론, 연극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시, 소설의 시, 평론의 시, 각본의 시, 회화의 시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의 시사랑이 얼마나 깊고 열렬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다소 사치스런 고독을 산 시인 콕토가 평생 가난과 술과 아편 그리고 병(폐결핵)에 시달리는 그야말로 처절한 고독 속에 살다가 간 불우한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와 깊은 우정을 나눈 것은 이 두 예술가 사이에 남다른 혼의 교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콕토가 모딜리아니에 관하여 ‘몽파르나스의 모딜리아니’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쓰기도 하고, 모딜리아니가 ‘장 콕토의 초상’(1917)을 그리기도 하는 등, 정신적 동지로서 서로를 아끼고 부추겨 주었음은 유명한 몽파르나스의 전설로 남아있다.

콕토는 모딜리아니의 데생에 대해 이렇게 칭찬했다. “모딜리아니의 데생은 최고의 엘레강스이다. 그는 우리들 모두의 귀족이다. 마치 유령의 선(線)처럼 보이는 핏기 없는 선은 결코 우아함을 잃은 적이 없다. 그의 선은 샴 고양이의 부드러움을 느끼게 한다.”



콕토의 산문시 중에 ‘파란색의 비밀’이라는 시가 있는데, 이것 역시 모딜리아니가 유난히 좋아했던 파란색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파란 눈의 소녀’, ‘파란 옷의 소녀’, ‘파란 에이프런의 소녀’, ‘파란 상의를 입은 소년’ 등 모딜리아니의 작품에는 청색을 주조(主調)로 한 것이 많다. 특히 모딜리아니가 ‘파란 눈’이라는 제목으로 그린 ‘잔 에뷔테른의 초상’(1918·사진)은 콕토의 시 ‘파란색의 비밀’과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할 것이다.

자유와 무한의 색깔인 파란색의 신비를 찾아 헤매다가 사라진 콕토와 모딜리아니는 파리의 몽파르나스를 무대로 예술혼을 불태운 현대의 방랑기사(放浪騎士)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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