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른다/우리들의 사랑을/나는 기억해야만 하는가/기쁨은 항상 고통 뒤에 왔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의 시 ‘미라보 다리’는 아마도 현대 프랑스 시 가운데서 가장 널리 대중들이 읊조리는 비가(悲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폴리네르를 단지 잃어버린 시간과 덧없음의 회환에 잠겨 안타까이 회상하는 현대적 애가의 시인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쉬르레알리즘’(초현실주의)이라는 용어를 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어낸 시인이며, ‘큐비즘’(입체주의)이라는 명칭도 최초로 만들어낸 전위적 미술비평가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입체파 운동의 선두에서 이론적 대부 역할을 한 ‘새로운 에스프리’의 기수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폴리네르는 ‘미학적 명상-입체파 화가들’(1913)에서, 입체주의가 ‘모방의 예술’이 아니며 새로운 경지에까지 도달하려는 ‘개념의 미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인식된 사실 또는 창조된 사실을 표현함으로써 3차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미학이라 강조한다. 그는 대표적인 입체파 화가로서 조르주 브라크(Geroges Braque, 1882~1963)를 내세우며 ‘시각적 사실이 아니라 지각적(知覺的) 사실로부터 빌려온 요소들로 새로운 전체를 그리는’ 창조적 조형예술의 혁명을 이루어낸 화가라고 높이 평가한다.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집들’ 또는 ‘에스타크의 나무들’(1908, 사진) 같은 일련의 에스타크의 풍경화들에서 우리는 색채가 단순해지고 형태가 기하학적 구조로 수렴되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출해내는 독특한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브라크의 입체주의적 미학의 새로움에 대해 깊은 예술적 동질성을 느낀 아폴리네르는 1913년에 간행한 첫 시집 ‘알코올’을 통해 입체주의적 기법의 시적 형상화를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감각과 기억이, 꿈과 현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아무런 원근법적 질서도 없이,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논리적 관계도 없이 동일한 평면상에 병치되어 있는 ‘변두리’ 같은 작품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이는 마치 브라크의 파피에 콜레가 보여주는 바와 같은 자연의 질서와는 다른 질서를 갖추고 있는 이질적인 여러 마티에르들의 병치 또는 편재의 구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 같은 파격적인 이미지 나열의 수법은 아폴리네르의 두 번째 시집이며 마지막 시집인 ‘상형시집’(1918)에 이르러서는 물체의 형태를 인쇄술의 배열에 의해서 재현하는 좀 더 파격적인 실험으로 발전한다. ‘비수에 찔린 비둘기와 분수’ 같은 작품은 ‘상형시집’의 입체파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