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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이야기> 수학여행에서 생긴 일



20여 년 전 가을. 교직에 발을 디디고 처음으로 떠난 수학여행길의 일이다. 마음도 들떠 출발한 지 몇 시간 후, 한 여학생이 갑자기 차 속에서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몸이 뒤틀어지고 마비증세를 보였다.
순간 당황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버스 기사에게 제일 가까운 병원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인근 병원에서 진찰을 마친
의사는 병명을 모르겠으니 충남대학교 병원으로 가 보라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여행일정을 모두 중단하고 버스는 병원을 향해 총알처럼 달렸다. 하지만 그 때 돌아가는 길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떠들고
흥겨워하던 학생들도 울상이 되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나는 아픈 학생의 근육을 풀어주려고 양손으로 계속 주물러댔다.
몇 시간 후 도립병원에 도착해 학생을 응급실에 입원시킨 나는 부모에게 연락을 취했다. 1시간쯤 후 학생의 어머니가 병원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 멱살을 붙잡고 "왜 멀쩡한 내 딸이 죽어가느냐, 살려내라"고 고함을 치는 게 아닌가.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멱살을 잡힌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봉변을 당했다. 주변 환자들이 무슨 구경거리가 생긴 양 모여들었고 처지는 점점
난처해졌다.
마침내 진찰의사가 와서 나와 자모에게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 파상풍이란 병인데 잠복기가 지나 여행 중에 발병했다"며 "며칠 전 학생이 녹슨 못에
손가락을 찔려 파상균이 잠복했다가 발병한 것으로 여행을 가지 않았어도 삼사일 후 발병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자모는 시골사람이라 파상풍에 대한 상식이 없어서인지 "여행 중에 발병했으니 선생님의 잘못"이라며 계속 내 가슴을 때리고 끌고다녔다.
그러기를 한 두 시간. 자모도 어느 정도 화가 풀렸는지 멱살을 놔주었다.
교직 초년병에 학부모로부터 그런 봉변을 당하니 정말 가슴이 아프고 서글펐다. 그 날 이후 나는 매일 병원으로 달려가 학생을 간호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도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일주일 후 퇴원하는 날, 나는 그 동안 전교생이 모은 성금과 내가 마련한 돈으로 병원비를 지불했다. 그 때,
퇴원한 학생과 함께 서 있던 자모는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선생님 때문에 딸이 살았다"며 몇 번이나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도 안심이
되었고 그 동안의 마음 고생을 털어낼 수 있었다.
그 후로는 교외지도나 수학여행을 갈 때, 학생들의 건강상태를 꼭 체크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태완 경기 표교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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