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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제언> 연금법 개악할 것인가


이군현
대전시교련 회장·한국과학기술원교수

여씨춘추에 보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항아리에 담긴 초가 누렇게 쉬면 자연스럽게 모기가 꾀니, 이는 시큼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일이든 그것을 이루는 가장 바르고 자연스러운 길이 있다는 뜻이다. 반면, 쥐를 잡아먹는 너구리를 가지고 쥐를 모여들게 하는 일이나
썩은 생선을 가지고 파리를 쫓는 것은 일을 그르치기 딱 좋은 어리석은 방법이다. 옛날 중국 걸·주의 정치가 후자의 예로, 안정과 질서를 파괴하는
정책으로 안정과 질서를 원하여 형법을 완비하고 형벌을 엄중히 했으니, 이는 유리그릇을 내리치면서 새 유리그릇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우매한 정치였다.
작금의 우리의 연금정책이 그런 전철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행정자치부가 이번에 발표한 공무원 연금법 개정안 입법예고가 그렇다. 공무원 연금 산정기준을 최종보수에서 퇴직 전 3년 평균보수로 전환하고 정부와
공무원의 법정 부담율을 현행 7.5%에서 9.0%로 인상하는 내용 등이 골자인 이번 개정안은 아무리 봐도 바닥난 연금재정을 메우기 위한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 이 개정안대로 한다고 해도 2005년이면 기금규모가 8300여 억원 밖에 남지 않아 재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개정안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리한 구조조정에 따라 초래된 기금 부실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없고 연금기금 고갈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금기금
부실의 주요 원인은 국가예산 사정을 고려치 않은 실적위주의 무리한 구조조정에 있다.
98년 이후 약 5만 여명의 교원이 퇴직했고 99년도 전체 공무원의 구조조정 숫자만 10만 여명에 달하며, 이에 따라 기금부실을 초래한 금액은
6조원이 웃돈다. 게다가 퇴직교원의 30%는 계약직 교사로 교단에 돌아와 월급을 받고 있으니 무리한 구조조정을 해놓고도 실질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연금기금 부실의 큰 원인 중 하나는 공공자금기금관리법의 적용을 받아 비효율적으로 운용된 데 있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데도 정부는 당장 필요한 기금마련에만 급급한 나머지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정부의 연금부담율이 턱없이 적으며 기금부실에 대한 보전 책임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교원, 공무원의 부담율을 공히 현행
7.5%에서 9.0%로 인상한다는 것은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또한 보전 책임에 대한 법률적인 근거를 명확히 하지 않는 이상 지금의
부실이 또 다른 부실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셋째, 보수산정기준을 3년간 평균보수로 전환하는 것은 교원과 공무원의 피해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같이 전환하는 것은 연봉제의 시행에 따라
최종보수가 최고급여액이 되지 않는 불합리한 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연봉제는 민간부문에서조차 일반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의 경우 현재로서는 도입 자체가 어려운 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정착되지도 않은 정책을 내세워 평균보수 전환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정책은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정부가 책임감 있고 장기적이며 국민의 부담이 최소화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유리그릇을 내리치면서 어찌
새 유리그릇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가.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고 더우면 시원한 곳을 찾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어찌 추워서 못 견뎌 하는 사람의
옷까지 벗기려하는지.
정부는 무리한 구조조정에 따른 기금부실의 책임을 지고 6조원에 상당한 부실기금을 충당해야 하며, 정부부담을 역시 개정안보다 훨씬 상향조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좀 더 근본적인 해결안을 찾기 위한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밝은 혜안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다시금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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