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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판자촌 녹인 갸륵한 `童心'


선일여고·은평중 고사리 손들
결핵환자·독거노인에 연탄 배달

"할아버지, 연탄 여기 놓을게요. 따뜻하게 지내세요"
서울 은평구 구산동 산61번지. 다닥다닥 허름한 판자집에서 폐결핵 환자와 독거 노인들이 하루하루 힘들게 모여 사는 곳. 가족조차 찾지 않아
겨울이면 마음까지 꽁꽁 어는 이 곳에 어린 학생들이 연탄 배달을 나섰다.
매년 판자촌의 겨울나기를 돕고 있는 윤희정(선일여고 교사), 김화홍(환경 미화원), 박지석(기능직 공무원)씨가 호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연탄을
나르는데 선일여고·은평중 학생 50여명이 팔 소매를 걷었다. 윤 교사는 "구불구불 길이 좁고 가팔라서 사람이 몇 장씩 일일이 날라야 하는
어려움도 있고 학생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오늘 날라야 할 연탄은 모두 1000장. 30여 가구에 30장씩 날라야 한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도구는 지게 6개와 한쪽 끝을 매듭 지은 1미터
짜리 케이블 선이 전부다.
처음 지게를 메 보고 연탄 구멍에 선을 꿰는 일이 마냥 신기한 학생들. 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여겨지던 연탄 한 장도 한 번, 두 번 계단을
오르내리고 나면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욕심에 연탄 10장을 한꺼번에 지게에 멨다가 이내 몇 장을 덜어낸 서창훈(은평중 2학년)군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요. 한 장도 아쉬운 분들이라 행여 깨트릴까봐 더 힘이 드나봐요"라며 거뭍한 땀방울을 조심스레 닦는다.

힘이 들어 손에 들었던 연탄을 아예 껴안고 나르는 여학생들도 보인다. 그 때문에 말끔한 얼굴과 교복이 금세 숯검뎅이가 됐지만 훈장처럼
자랑스럽다. 마치 자신이 스스로 타올라 주위를 따뜻하게 해 주는 연탄이라도 된 듯한 기분일까.
선일여고 한상민(18)양은 "관공서를 청소할 때는 별로 봉사한다는 느낌이 안 들었는데 오늘은 정말 힘이 많이 든다"며 "제가 나른 연탄으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고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작은 지게에 한 번에 3장씩, 꼭 30장을 날라 누나, 형들을 놀라게 한 구산초등교 이진훈(11)군도 오늘 한 뼘은 자란 느낌이다. 이 군은
"연탄도 처음 보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것도 처음 봤어요.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일이니까 힘들지 않고 오히려 신나요"라며 어깨 끈을
질끈 잡았다.
두 딸을 출가시키고 취로사업에 나가며 15년째 판자집에서 혼자 사는 박영근 할아버지. 방문 앞에 연탄을 수북히 쌓는 고사리 손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아이들이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 나도 용기 잃지 않고 살아간다"며 연신 웃음만 짓는다.
그러기를 두 시간. 연탄이 바닥을 드러내자 아이들은 기쁘면서도 한편 아쉬운 표정이다. 오늘 나른 양으로는 보름 밖에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양말 200켤레를 나눠 드리며 또 다른 누군가의 온정이 있기를 기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윤희정 교사는 "앞으로 2000장을 더 드려도 한 겨울을 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며 "집으로 돌아갈 땐 흐뭇한 웃음을 지어야 하는데 왜 자꾸
마음이 무거워지는 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조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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