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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리얼리즘의 위대한 승리

⑭ 플로베르와 쿠르베

사실주의 문학의 성서로 간주되는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80)의 소설 ‘보바리 부인’(1857)은 출간되자마자 “공중도덕과 종교윤리, 미풍양속을 모독하고 있다”는 죄목으로, 당시의 검찰당국이 법정에 기소까지 했던 작품이다. 오늘날 근대소설의 아버지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선구자가 세인들의 비난을 받고 문단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킨 ‘소송 당한’ 작가였다는 것은 퍽 흥미로운 일이다.

소설 ‘보바리 부인’은 당시 노르망디의 루앙 지방에 널리 퍼져 있었던 한 유부녀의 간통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 줄거리로만 본다면 지극히 저속하고 평범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종래의 낭만주의적 정사 이야기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그야말로 객관적이고, 몰개성적이고, 무감동적인 기술(記述)을 구사함으로써 리얼리즘의 새 소설미학을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플로베르의 이런 객관적 현실묘사를 대할 때마다 우리는 “천사는 보이지 않으므로 그리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동시대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Flaubert, 1819~ 77)를 떠올리게 된다.

1850년에 ‘오르낭의 매장’이라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이상미를 추구하는 앵그르 파의 고전주의와 상상적 주제를 다루는 들라크루아 파의 낭만주의를 다 같이 배격하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릴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특히 그는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해에 살롱에서 낙선한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리얼리즘 선언’이라는 책자를 배포하여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사실주의, 귀스타브 쿠리베’라는 간판을 내걸고 생애의 최대의 야심작인 ‘화가의 아틀리에’(1854~55‧사진)를 비롯하여 40점의 작품을 공개한다. 이 초대형 작품은 쿠르베 자신의 회화적, 사회적, 사상적 주장을 요약한 선언서이기도 했는데, 이 특별전을 계기로 해서 그는 사실주의 회화의 창시자가 된다.

자연과 생명 그 자체의 모습을 정확한 사실주의적 관찰의 기법으로 묘사함으로써 거기에 존재의 실재성을 부여하는 미학적 태도에 있어서, 플로베르와 쿠르베는 참으로 많이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시대를 산 그들 사이에는 개인적인 교유(交遊)는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이들 두 예술가는 낭만주의를 뛰어넘어 19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의 풍속도를 그리는 동일한 예술적 지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깊은 유대감으로 묶여 있는 정신적 동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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