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는 폭풍우의 드라마, 인생에는 고통의 드라마가 있다”고 말했던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가 1890년 7월 29일 파리 북쪽 34킬로미터 떨어진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서 37세의 짧은 인생을 마감한지 어언 118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생전에는 하루에 3프랑 50전을 받는 지붕 아래 방의 집세를 지불하지 못해 쩔쩔매기도 했던 반 고흐의 그림 ‘가셰 박사의 초상’(1890)이 1990년 5월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2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낙찰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의 ‘계량화된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고흐의 ‘아를르 시대’의 걸작 가운데 하나인 ‘밤의 카페’(1888·사진)는 그의 투명한 시선이 포착한 현실 인식의 깊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적색, 황색, 녹색, 황록색 등의 조합이 불러일으키는 밝은 색채 처리의 효과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묘사이다. 고흐는 이 그림을 통해서 “카페는 인간이 광기에 젖으며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장소임을 나타내 보이려고 애썼다”고 주석을 붙였다. 그리고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인간의 무시무시한 정열을 나타내려 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20세기 연극 사상 빼놓을 수 없는 연극의 혁신자, 특히 ‘잔혹 연극’의 선구자로 알려진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1896~1948)가 ‘반 고흐-사회에 의해 자살한 사람’이라는 주목할 만한 고흐론을 남긴 것은 이 두 광기어린 예술가가 매우 긴밀한 상통관계, 또는 동류항으로 묶을 수 있는 형제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아르토는 ‘귀를 싸매고 파이프를 문 자화상’(1889)에 나오는 고흐의 눈이 ‘육체를 혼에서 해방시키고, 정신의 속임수를 발가벗긴’ 눈이라고 말한다. 어찌 그런 투명한 눈을 가진 사람이 미치광이일 수 있느냐고 아르토는 항변한다.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관찰할 수 있는 명석함을 지닌 화가 고흐는 일상적 관습에 얽매여 사는 ‘정상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광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범속한 현실 세계와의 피투성이 투쟁을 끊임없이 벌여야만 했던 아르토의 고흐론은 그 자신과 같은 위치에 서 있는 고흐의 세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 광기의 권리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르토가 고흐의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흐와 아르토가 보여준 예술의 반란, 그것은 17세기 이래의 근대 유럽을 지배해 온 이성의 체계에 대항한 광기의 불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