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던 나의 여고시절. 재미있게 화학 수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 드르륵 출입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선생님께 하얀 쪽지를 전해 드리고 있었다. "성인숙, 이리 나와" 나는 깜짝 놀라며 어리둥절하였다. "국어 선생님께서 너를 잠깐 보자고 하셨단다. 빨리 다녀오렴" 나는 화학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웬일인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제 국어시험 잘 봤나 봐" 부러운 듯 수근대는 아이들의 소리를 뒤로하고 교무실로 들어서니 선생님께서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숙직실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선생님께서는 침대에 걸터앉으시더니 갑자기 일어서시면 우렁찬 목소리로 호동왕자의 대사를 읽으셨다. 연세는 지긋하셨지만 왕자다운 눈빛과 목소리, 젊음이 넘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불꽃처럼 열정을 태우셔서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대본을 주시며 감정을 넣어 읽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예기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뿔사, 나는 그제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교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내가 호동왕자 역을 포기하자 오토바이란 별명을 가진 왕순이가 그 역을 맡게 되었다. 활달하고 심기도 다분하며 웃기기도 잘하는 주근깨 투성이 왕순이. 재능도 다양하지만 줄방귀 오토바이 소리가 발동되는 날이면 웃다 지쳐 배가 찢어질 정도로 아팠고 하마같은 입으로 '싼타루치아'를 부르는 실력이 대단했던 왕순이는 역시 호동왕자에 적격이었다. 교단에서 우연히 연극반을 맡아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나의 호동왕자 한창복 선생님을 늘 생각하곤 했다. 용기부족으로 기회를 포기했던 후회보다 열정을 불태우시던 그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면 더욱 그리워지는 선생님. 선생님!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성인숙 충남보령 대창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