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아이들이 가고 난 후의 빈 교실은 더 한기가 느껴진다. 열흘 전에 걸린 감기가 떨어질 기미가 없다. 하긴 일교차가 심하니 그럴 만도 하지. 무릎이 너무 시려 교실에 있지 못하고 교무실로 몸을 녹이러 가는데 특수반 김 선생님 학급 안내판이 눈에 띈다. 담임사진이 붙어 있어야 할 곳이 비어있다. 참 선생님도 마땅한 사진이 없으면 나처럼 잡지에서 적당한 사진이라도 오려다 붙이실 일이지. 꼭 내가 해드려야 하나. 난 물 만난 고기처럼 철딱서니 없게 그때부터 신바람이 난 거다. 누가 볼세라 얼른 안내판을 떼어왔다. 교실에 있는 잡지를 뒤적이다가 궁합이 딱 맞는 40대 중반의 근엄한 표정을 한 남자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가로 5㎝, 세로 6㎝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잘라 붙이고 보니 그럴 듯 했다. 잽싸게 갖다 걸고 뿌듯한 마음으로 교실로 오니 창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다보니 남자 선생님들이 바로 김 선생님을 차에 옮기고 계셨다. 점심식사 후 차도 같이 마셨는데 어쩜 저렇게 꼼짝도 못하시는 걸까. 교무실로 내려가니 교감 선생님께서 직원들은 연락이 올 때까지 학교에서 대기하라는 말씀을 하신 후 뒤따라 병원으로 가셨다. 조금 전까지도 멀쩡하셨는데 무슨 일이야 있을려구. 같이 계시던 선생님들 말씀이 책상 맨 아래서랍에 손을 대신 자세로 엎드려 계시길래 서랍이 열리지 않아 저러시나 보다 하고 다가가 보니 의식이 없어 급히 병원에 모시고 간 것이라 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네? 돌아가셨다구요?" 무언가를 예감하셨던 것인가. 1교시 후 쉬는 시간에 복도에 나와보니 물끄러미 먼 산을 바라다보고 계셨다. 점심시간에도 학년 휴게실마다 다니시며 말씀을 나누셨다고 한다. 3일 전에는 옛날 6학년 담임했을 때의 제자 둘이 결혼을 하는데 주례 부탁을 받아 쉰도 안된 젊은 나이에 주례를 서 봤다고 그리도 좋아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기도 전인데 왜 그리 급하게 데려 가셨을까. 이 험난한 세상 고생하지 말고 편안한 안식처에서 쉬라고 그리 하셨을까.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선생님 영혼이 자신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나 할는지. 옛날에 본 `사랑과 영혼'의 장면 장면이 새삼 떠오른다. 오늘가나 내일가나 우리 전부 가야할 곳. 김 선생님 자리잡고 계세요. 훗날 언젠가는 다시 만나 뵙게 되겠지요. 그런데 혹시 내가 김 선생님 영혼과 마지막으로 장난한 것은 아닐까. <안영희 경기 무원초등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