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42~98)는 상징주의의 3대 시인 중 한 사람으로 보들레르에 이어 순수시의 극치, ‘고귀한 시의 이상’을 끈질기게 추구한 수도사로 평가된다.
일생 동안 시를 종교처럼 생각했던 그는 ‘시의 종교’, ‘미의 종교’, ‘이상의 종교’에 도달하기 위해 세속적인 모든 욕망을 버리고 순교자적인 고행에 삶 전체를 바친다. 그는 한 편의 야심적인 순수시를 쓰기 위해 5년, 10년, 또는 20년의 산고를 겪기도 한다. ‘주사위 던지기’(1897) 같은 작품은 무려 30년간의 번민에 찬 심사숙고 끝에 완성한, 프랑스 시문학 사상 가장 난해한 시적 텍스트로 알려져 있다.
말라르메는 사물의 순수한 개념과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 언어를 일반적 의미에서 해방시키고, 시어의 배합을 일상적인 규칙과 구문에서 해방시켜 고도의 음악성과 특이한 비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순수시를 쓰고자 했다. 그는 일반 대중에게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인정받지도 못했다. 기교에서는 포의 영향, 사상 면에서는 보들레르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는 그의 초기 시편들 중 유난히 낭만주의적 색채가 뚜렷한 ‘바다의 미풍’ 정도가 겨우 일반 독자들에게 읽혀질 뿐이다.
이러한 순수 추구의 시인 말라르메가 일반 대중의 냉랭한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환상적인 상징주의의 미학을 밀고 간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의 조형세계에서 동질적인 정신성을 발견하고 거기에 호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르동보다 말라르메가 2년 늦은 정도의 나이 차이밖에 없으므로, 이들 두 사람은 공통적 정신 풍토 위에 서 있는 동년배들이라 할 수 있다.
1885년 2월 르동으로부터 석판화집 ‘고야 예찬’을 헌정받았을 때, 말라르메는 르동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이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려… ‘꿈속의 얼굴’(1885)과 ‘늪지의 꽃’(1885·사진)은 그 작품만이 지난 빛, 결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빛에 의해 기괴한 비극성을 생활에 반영시키고 있소.”
말라르메가 르동을 가리켜 ‘결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빛에 의해 기괴한 비극성을 생활에 반영시키고 있는’ 화가, ‘실존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신비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순교자’라 말한 것은 르동에 대한 최대의 찬사라 할 수 있다. 화가이면서 시인, 음악가로서의 예술적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는 르동의 자유로운 환영의 회화세계 속에서, 말라르메는 자신과의 긴밀한 정신적 혈연성을 느낀다. 르동 역시 이러한 말라르메의 깊은 이해와 공감에 힘입어, 환영을 쫓는 화가로서의 커다란 자신감과 용기를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