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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열렬한 민중발견의 동지

⑲ 아라공과 제리코


“그대 눈 너무도 깊어 물을 마시러 몸을 기울이며/나는 보았다, 온갖 태양들이 그리로 와 제 모습 비춰보는 것을/온갖 절망들 그리로 뛰어들어 죽어가는 것을/그대 눈 그리도 깊어 내 거기서 기억을 잃어버리네”

이렇게 시작되는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1897~1982)의 시 ‘엘자의 눈’은 프랑스 현대시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랑시의 명편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말할 것도 없이 ‘엘자’는 러시아의 혁명 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의매(義妹)로서 1928년에 만나 시인의 아내가 된 엘자 트리올레를 가리킨다. 그녀는 무려 32권에 걸친 ‘교차 소설집’(1965~1974)을 함께 쓴 동지적 공동 집필자일뿐만 아니라, 시집 ‘엘자의 눈’(1942)을 비롯해서 ‘엘자’(1959), ‘엘자에 미친 남자’(1956) 등을 태어나게 한 시적 영감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아라공은 그 어느 시인보다 강렬한 울림의 연가를 많이 남긴 시인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코뮤니스트 작가’라는 꼬리표를 붙인 채 활동했던 이념적 성향 때문에, 그의 문학에 대한 가치평가 또한 편향적이고 불공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라공이 1958년에 발표한 소설 ‘성주간’(聖週間)은 개인적 상황과 역사적 비극을 탁월한 형상력으로 직조해 낸 매우 성공적인 작품으로 간주된다. ‘성주간’은 1815년의 성주일(부활절 전 주일을 말함)에 해당하는 3월 19일부터 25일까지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일종의 역사소설이다.

실제적 사실과 가공의 이야기를 교묘히 뒤섞으며 수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있는 이 작품은 제정(帝政)과 왕정(王政) 사이에 끼여 우왕좌왕하는 민중의 앞날을 전망해보는 장대한 정치, 사회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실재 인물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중요한 핵심적 인물은 작가 자신이 ‘민중의 발견’이라는 주제를 구현하기에 가장 합당한 인물로 선택한 ‘메두사의 뗏목’(1819·사진)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1~1824)이다.

아라공은 당시 화단에 샛별처럼 등장하여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제리코의 일대기에 커다란 감명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극한 상황 속에서 괴로워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직시하여, 그 벌거벗은 실체를 예리하게 포착할 줄 아는 그의 비범한 통찰력에 깊이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아라공이 민중발견의 대서사시 ‘성주간’의 중추적 인물로 제리코를 택한 것은 이러한 연대감정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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