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보 로망 이후 가장 전위적인 문학운동을 앞장서 주도해 온 ‘텔켈’ 그룹의 기수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1936~ )는 줄리아 크리스테바, 마르슬랭 플레네와 더불어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를 대표하는 3인방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61년 전통적인 심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누보 로망적 양식의 실험소설 ‘공원’(메디치상 수상)을 발표함으로써 커다란 주목을 받게 되며 프랑스 문단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선봉장이 된다.
줄거리라는 ‘시간성’보다는 ‘짜맞추고 뒤섞은’ 이미지의 조합에 의해 공간성을 획득함으로써 하나의 치밀한 그림이 되는 소설 ‘공원’은 현대소설사에 등장한 돌연변이 같은 실험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소설의 시각적 차원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솔레르스가 정신적 내용을 확실히 포착하여 그것을 형태의 정확한 소묘와 선명한 배치에 의해 조형적으로 전개시킨 17세기의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을 특별히 주목하여, 그에 대한 본격적인 평론과 소설 ‘푸생 읽기’(1961)를 쓴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자신보다 3세기 전에 태어난 화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솔레르스는 푸생에게서 시대를 뛰어넘는 어떤 정신적 동질성, 자신이 추구하는 바의 소설미학의 세계를 발견한다.
푸생의 ‘여름’(1660~64, 사진)은 그의 회화가 다다른 최고의 완성된 경지를 보여 준다. 그 이전의 작품들 가운데, 인물이 단 한사람도 나오지 않는 풍경만의 그림 ‘일출’(1658)을 내세울 수도 있지만, 오직 자연묘사만 있는 것보다 푸생의 휴머니즘적 주제가 잘 구현되어 있는 ‘여름’이 보다 완벽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스라한 풍경을 배경으로 고대 건축이 있고, 화면 왼쪽의 큰 나무아래 모여 있는 농사짓는 사람들의 실재감, 자연과 인간의 만남, 그 일체감의 묘사는 고전주의 시대의 다른 화가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감동적인 것이다.
확실히 푸생 회화에는 솔레르스가 말하는 의식적인 표현의 독자성이 있다. 그의 데카르트적 미학은 ‘정신의 수학’이 갖는 ‘명증성’(明証性)을 보여준 점에서 현대회화의 정신에 그대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솔레르스는 푸생의 그림이 보여주는 이러한 데카르트적 미학, 그 명증성 속에서 놀랍게도 가장 첨단적인 소설미학의 뿌리를 찾아낸다.
푸생과 솔레르스의 만남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심혼(心魂)의 반향(反響)이라 할 수 있다. 솔레르스가 푸생을 가리켜 “검증 가능한 현실적 요소를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어법을 창시한 사람”이라고 말한 데서 보듯이, 솔레르스에게 있어 푸생은 분명 기호체계로서의 예술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건네준 계시자였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