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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누보 로망과 신조형주의의 만남

22-뷔토르와 몽드리앙

19세기 플로베르풍의 사실주의 또는 발자크풍의 전통적 소설형식을 송두리째 거부하고 새로운 ‘탐색으로서의 소설’을 쓰고자 한 20세기 ‘누보 로망’의 작가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소설가로 미셸 뷔토르(Michel Butor, 1926~)를 들 수 있다. 그는 사르트르가 정확히 지적한 바, ‘소설에 의하여 소설을 부정하고’, ‘소설에 대한 소설’을 시도한 혁명아라 할 수 있다.

특히 2인칭 소설이라는 특이한 형식을 개척한 ‘라 모디피카시옹’(변모)은 1인칭 소설의 효과와 3인칭 소설의 효과를 독자에게 동시에 느끼게 하는 혁신적 기술방법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뷔토르가 이 소설에서 종래의 소설처럼 레옹 데르몽이라는 주인공을 ‘그’ 또는 ‘나’라 부르지 않고 ‘당신’이라 부른 것은 그의 독특한 소설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소설이란 작가가 자기 멋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읽어가는 독자의 마음속에 점점 형성되어가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당신’이라 부르는 것에 의해서 독자도 작품 속에 끌려가고, 작가와 똑같은 자격으로 창조에 관여해야만 한다. 또한 소설은 현실이 어떤 식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가를 연구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누보 로망적 소설미학을 극단까지 밀고 간 뷔토르가 질감이나 입체감의 사실적 표현을 거부하고 순수한 2차원의 ‘평면적’ 추상회화에 몰두한 피에트 몽드리앙(Piet Mondrian, 1872~1944)을 좋아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몽드리앙의 순수한 추상회화가 갖는 특징은 일체의 구상적, 재현적인 요소를 포기하고 수평선과 수직선 그리고 삼원색과 삼비색(흰색, 회색, 검정색)만을 사용한 정방형과 구형의 배치에 의한 화면구성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형태와 공간구성의 정확한 결정에 의해, 말하자면 구도(構圖)에 의해 비로소 확립되는 순수한 생명력을 표현한다는 것’이 그의 회화적 목적이다.

이러한 몽드리앙적 조형언어가 갖는 깊은 의미를 테마비평의 방법을 적용하여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읽어낸 것이 바로 미셸 뷔토르이다.



몽드리앙의 ‘뉴욕 시티’(1941~42, 사진)에 대한 뷔토르의 분석은 그 가장 좋은 실례라 할 수 있다. ‘뉴욕시티’가 보여주는 기하학적 색채의 조합은 그 자체로서 무어라 설명키 어려운 미적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만, 뷔토르는 사소하고 재미없는 수직선과 수평선의 숫자를 낱낱이 열거하면서 색채와 색채가 만들어내는 조화와 간섭의 효과에 대해 예리하게 분석한다.

이와 같은 뷔토르의 감동적인 ‘동일성의 비평’은 일체의 깊이와 음영을 거부하는 몽드리앙의 기하학적 추상회화가 지닌 심층적인 의미를 포착하여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화가 자신의 내적 움직임과 숨결을 엿듣게 한다. 결국 뷔토르는 자신이 소설장르를 통해 탐색한 누보 로망의 미학을 몽드리앙 회화의 분석에 실천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그 유용성을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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