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그라드는 2차 세계대전 최대 격변지의 한 곳이며, 당시 독·소 양군의 전사자는 100만 명을 넘었고 그 정확한 피해규모는 아무도 모를 만큼 참혹한 전쟁터였다…. 일반 병사에서 추앙받는 저격수로 변신하는 바실리(주드 로)와 선전장교 다닐로프(조셉 파인즈), 그리고 여성 병사 타냐(레이첼 와이즈)와의 만남, 여기에 바실리와 독일 최고의 저격수 코니그(에드 해리스)의 대결…. '애너미 앳 더 게이트'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쟁영화다. 늘 그렇듯 전쟁영화의 화두는 삶과 죽음. '애너미 앳 더 게이트'의 인상적 장면을 통해 본 죽음, 거기엔 너무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스탈린그라드 수십 대의 비행기들이 하늘에서 비(총알)를 내린다. 그 비는 배 안에 있던 병사들의 몸을 적신다. 아우성과 몸부림... 그 비는 살과 몸을 터트린다. 사방에 피가 튀며 그 피를 뒤집어쓴 살아남은 자는 오로지 살고싶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느낀다. 도망을 가야한다. 하지만 그 것은 작은 소망일 뿐. 배 안에서 탈영하는 몇 명의 병사에게 가해진 무차별 사격. 눈물이 흐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념 앞에 희생되어 가는 순박한 병사들. 자신의 살이 터지고 피가 튀어 죽는 고통보다 옆에서 그 죽음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고통이 더 크다. 자신 역시 그렇게 될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기에....
I am a stone 숨소리가 느껴진다. 일정한 호흡. 들여 마시고 다시 내쉬고 다시 들여 마시고 내쉬고. 렌즈로 어딘가를 보고 있다. 그리고 자기암시를 한다. 나는 돌이다. 나는 돌이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 오로지 단 한발의 총알만이 필요할 뿐. 숨을 들여 마시고 숨을 멈추는 순간 "타앙" 또다시 눈물이 난다.... 머리에 구멍이 나고 피가 흐른다. 죽어 가는 사람은 자신이 죽는다는 걸 느낄 수 있을까. 자신이 무(無)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음을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로 남는다....
눈(目)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스나이퍼들은 죽기 직전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이를 보려고 한다. 그것은 본능일까. 저격수들은 죽이고자 하는 이를 느끼려한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상대라면 어떤 행동을 할까. 상대가 죽어야만 내가 숨을 쉴 수 있기에...
조국의 영광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을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자의 죽음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대에 떠밀려, 역사에 떠밀려 어찌할 수 없이 죽어 가는 대다수 영혼에게 찾아오는 죽음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죽음인가. 이들에게 나라를 지켜야하는 사명감, 조국애가 무슨 소용 있을까. 전장에서 도망간다고 그들을 함부로 욕할 수 있을까.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은 어떤 이유에서건 고귀한 것일 진데... 인간이기 때문에... /서혜정 hjkara@kfta.or.kr
*사족- 바실리 자이체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기간 동안 250여명을 저격 사살했으나 전투종반 지뢰를 밟아 실명했다고 한다. 물론 유태인 여자 지원병 타냐와의 로맨스는 허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