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철호 선생님! 4월에 저의 출산을 축하하며 포도송이를 보내 주셨을 때 선생님, 저는 4월이면 사탕처럼 터지던 여고 교정의 등나무 넝쿨을 떠올렸습니다. 저희가 '현자의 자궁'이라 부르며 사랑했던 교정의 등꽃은 이미 저버렸겠지만 점심시간이면 선생님과 무릎을 맞대고 꽃 빛 미래를 그리던 그 날의 풍경들은 고스란히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 되길 역설하셨고 유난히 열성적인 국사 수업으로 팬클럽이 있을 정도로 인기 만점이었던 선생님, 그러나 선생님과의 인연은 교실 안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큰 축복입니다. 누구나 마음에 남는 스승 한 분쯤은 다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일이 힘겨울 때마다 바로 몸 가까이서 격려해 주는 스승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문제행동을 지도하는 일이나 수업시간에 산만한 학생들을 이끄는 효과적인 교수법에서부터 부부간의 도리, 자식을 키우는 일에까지 꼼꼼히 일러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더러운 물에 몸을 담그고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다 깨끗하게 최후를 맞는 연꽃을 가장 사랑하신다 하셨지요. 선생님은 바로 그 연꽃 같으신 분입니다. 교사에 대한 환상 따위는 이미 갖고 있지 않고 세상을 다 알아버렸다고 착각하는 학생들 앞에 설수록 교사는 만능이어야 한다며 끝없이 배우라고 채찍질하시던 선생님, 남편이 뒤늦게 배움을 준비하는 것도 선생님의 그 채찍질 덕분입니다. 다시 오월입니다. 여름으로 달려가는 공기가 후텁지근한데도 수줍게 속살을 열어 보이는 라일락의 향기만 더욱 향그러운 것은 우리 주변에 감사해야 할 이들이 너무 많은 까닭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은혜 중 으뜸은 바로 선생님입니다. 수업을 제 일의 자존심으로 삼으셨던 선생님은 바로 교사로서의 제 푯대입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김인숙 경남 통영 충무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