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2반 신 준(15) 군은 등교 후 담임선생님이 계신 수학 1실로 향했다. 출석확인과 전달사항을 들은 김 군은 복도에 있는 라커룸에서 사회책을 꺼내 공통사회 1실로 이동했다. 원형으로 책상이 배치된 교실에 앉아 선거제도에 대한 토론을 벌이다가 인터넷으로 정치인의 연설을 들었다. 끝 종이 울리고 2교시 국어가 든 신 군은 교과서를 바꾸어 들고 운동장 벤치에 앉았다. 국어 1실은 바로 옆이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생겨서다. 시작종이 울리기 직전 신 군은 국어1실로 들어갔다. 오후 4시 정규 수업을 모두 마친 신 군은 자신의 구역을 청소하고 다시 수학 1실에서 담임선생님의 전달사항을 듣고 귀가했다. 대학 신입생의 하루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풍경은 경기 장호공고에서 이미 일상화된 일과다. 올해부터 `교과전용교실제'가 도입되면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전용교실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과별 전담교실을 둬 수준별 학습자료를 갖추고 교실환경도 획기적으로 재구조화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수준별 개별화 학습' `교사의 전문성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교과전용교실제 도입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백승범 교장의 주장이다. 올초 교과전용교실제추진위원회를 구성한 장호공고는 2001학년도 주당 수업시수를 교육과정 시간 기준표에 따라 산출하고 전 교실을 대상으로 한 교실배정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그 결과 490시간의 주당 총 시수가 나왔고 25개 교실이 `×학년 ×반'의 꼬리표를 떼고 `국어실' `수학실' `사회실' `실습실' `전자1실' 등 전용교실 팻말로 바꿔 달았다. `자기 교실'을 갖게 된 교사들에게 발등의 불은 역시 교실의 특성화. 효과적인 수업안을 짜고 수준별 학습지와 각종 수업 보조자료, 기자재를 갖추는 일로 교실은 밤늦도록 불이 꺼질 줄 몰랐다. 방과후 중고시장을 돌며 책장·자료보관함을 구입하고 창고에서 잠자던 시청각 자료와 집에 있던 전공서적, 비디오테잎이 교실로 옮겨졌다. 당장 필요한 교구들은 사비를 들여서까지 마련했다. 김일구 교사(국사1실)는 "주머니 돈으로 슬라이드 환등기와 스크린, 필름자료를 샀지만 보다 풍성하고 재미있는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슬라이드 자료를 위해 주말마다 카메라를 메고 전국의 유적지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이밖에 무선마이크와 앰프, 켐코더, 전축까지 들고 와 설치한 최형근 교사(국어 ), 합판으로 반 아이들의 사물함을 만드느라 열흘 동안 밤 11시를 넘긴 박홍선 교사(전자1실) 등 전용교실에 쏟는 교사들의 열정이 남달랐다. 그 때문에 전용교실은 자료형 수업과 수준별 수업이 가능한 `맞춤교실'로 탈바꿈했다. 기존 학급에서는 엄두도 못 내던 그룹별 좌석배치와 소집단 개별화 수업, 활발한 토론-협력 학습이 자리잡은 것이다. 김상순 교사(수학 2실)는 "우수 부진 학생이 한 조가 돼 수준별 학습지와 자료를 이용해 협력학습을 하고 소집단으로 나눠 선수 보충학습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동택 교사(영어 1실)도 "ABC도 모르는 학생들은 기존의 학급편제에서 소외되기 쉬웠다"며 "지금은 다양한 시청각 자료로 수준별 모둠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교실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수업 효과는 당연히 높아졌다. 임병준 교사(국어 2실)는 "스스로 답을 찾고 토론하는 수업을 하면서 3개월간 자는 학생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자랑했다. 김태현(1학년) 군은 "무엇보다 다양한 자료와 학습지로 진행하는 수업이 흥미롭고 자료를 찾아 도서관에 가거나 질문이 있을 때 해당 선생님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 교실마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수업 설계와 자료 제작에 몰두하는 교사들의 모습도 전용교실제가 낳은 새로운 문화. 개인 컴퓨터와 프린터, 교과관련 자료, 대형 모니터 등이 갖춰진 교실은 `개인연구실'로 손색이 없다. 이천종 교감은 "수업안과 학습지를 제작하고 교과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한편 빈 교실에서 수업 시나리오를 짜 예행연습까지 하는 교사도 있다"고 말했다. 장호공고는 이 달 15일 모든 학생에게 개인사물함을 설치해줄 예정이다. 또 잦은 이동을 막기 위해 2시간씩 수업을 묶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문초진 교사(연구주임)는 "학생생활지도 등 보완할 과제가 많지만 교과전용교실제는 질 높은 수업과 교사의 전문성 제고 큰 효과가 있다"고 제언했다. /조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