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 일과 중에서 그래도 조금 여유가 있다면 점심시간이다.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교무실에서 잡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동생에 대해 상담할 것이 있다며 경진이 누나가 학교로 찾아오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경진이는 순진하고 착하지만 학력은 조금 뒤떨어지는 우리 반 개구쟁이다. 교실에서 떠들고 장난치다가 친구들과 다투는 일도 많다. 그런데 그 때마다 경진이 어머니는 `누가 우리 경진이를 괴롭혔다'며 자주 전화를 주시곤 했다. 어머니는 또 그 때마다 경진이가 둘도 없는 귀한 자식이라고 늘 강조하셨다. 한 시간 반이 지나 도착한 경진이 둘째 누나로부터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들었다. 경진이 부모님은 하나뿐인 아들을 대학 재학 중 암으로 잃고 실의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던 전형적인 남아선호 숭배자셨다고 한다. 그런 부모님에게 늦둥이 경진이는 그야말로 삶의 의욕을 주고 새 출발을 하게 한 주인공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경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남겨주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시는 모습이 애처롭다며 경진이 둘째 누나는 급기야 울음까지 터뜨리고 말았다. 잠시 후 진정이 된 누나는 경진이가 집의 기둥이자 부모님의 생명 줄이라는 말과 함께 이제까지 그를 돌봐주던 막내 누나가 오는 일요일 결혼을 하게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 온 종이가방을 살며시 내밀었다. 그 속에는 한 권의 책과 사탕이 들어있었다. 사탕은 경진이와 급우들 것이고, 책은 담임인 나의 몫이었다. `먼 훗날 경진이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특별한 선생님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라는 누나의 기도와 함께 `에스더 라이트'가 엮은 `선생님'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뭔가 다른 선생님들의 가슴 찡한 40편의 실화들이 실려 있었다. 책과 사탕! 25년의 교직 생활 동안 이런 특별한 선물은 처음이었다. 그 날 이후 난 항상 `책과 사탕'의 의미를 되새기며 아이들 앞에 선다. `먼 훗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교실에서 함께 하는 학생들에게 참된 가르침과 사랑을 베풀기를…'. 그것이 책 한 권과 사탕이 내게 준 잊지 못할 교훈이 됐다. <남중호 경북 안동시 북후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