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영화 중 개인적으로 기대를 품은 작품, '파이널 환타지'. 미리 공개되었던 몇몇 스틸만으로 '파이널 환타지'는 당연히 기대를 모을만했다. 세상에, 이렇게 사람과 똑같은 캐릭터가 있다니, 마치 살아있는 것 같군! 마찬가지 이유로 '파이널 환타지'는 여지껏 제작되었던 여느 3D 애니메이션에 비해 가장 사실적인 작품이라는 입소문이 돌기도 했다. 물론 소문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사실이었지만….
가상 캐릭터에 영혼 불어넣을 수 있을까
한줄기 빛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따라 사람과 사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그 것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경이로움에 찬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1분 분량의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기차'라는 필름을 프랑스 그랑 카페에서 상영했을 때 사람들에게 던져진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실물이 아닌 사진이 실제처럼 움직인다는 것. 이 것은 환상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을 현실에서 구현해낸 하나의 사건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내러티브가 없었던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에 대한 인기는 곧 시들어버렸습니다. 현실 모습의 재현만으로는 더 이상 관객들의 환상을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 때 죠르쥬 멜리에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마술사라는 직업을 살려 '이야기로서의 영화'를 가능케 했습니다. 그는 내러티브와 여러가지 특수효과를 통해 환상을 영화 속에서 구현해냈지요. 멜리에스 이후로 영화는 꿈과 환상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야말로 '최후의 환상' 이라 주장하는 영화를 접하게 됩니다. 영화 '파이널 환타지(Final Fantasy)는 'the spirits within'이라는 조금은 의미심장한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상의 캐릭터에 진짜 '영혼을 불어넣겠다'고 하는 도전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과연 이들이, 가상의 캐릭터에게 영혼을 넣어주고 뤼미에르 형제 이후 환상을 구현해내기 위한 영화의 노력들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요. 일단 그래픽을 보면, 그들의 자만이 결코 허세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됩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해낸 인간의 모습은 실사에 가까운 피부의 질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특히 여주인공 '아키'박사의 얼굴을 클로즈업했을 때 보이는 피부의 잡티라든가 주근깨, 미세한 잔주름의 표현은 정말이지 그 어떠한 액션 장면들보다도 스펙터클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지요. 게다가 명암의 적절한 사용은 이들이 살아있는 세계가 실제인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움직임에 있어서도 그간 걱정했던 일부의 시각과는 달리 상당히 사실적입니다. 그러나 '사실적'일 뿐입니다. '사실적'이라는 말은, 실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실제에 가깝기는 하지만 실제는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파이널 환타지'의 그래픽들은 '사실적'이긴 하지만 '실제'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습니다. 가장 신경썼다는 여자주인공 '아키'의 머리카락 흔들림은 너무 부드러워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여자주인공의 머리카락이 상영 내내 샴푸광고에 나오는 모델들의 머리카락 흔들리듯 하늘거리다니.... 그러나 이 캐릭터들의 현실성이 가장 떨어지는 부분은 바로 눈동자입니다. 이들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실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뿐이었습니다. '토이스토리'의 주인공보다 더 인형 같은 그들의 눈에서는 '영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영화는 첨단 테크놀로지로 완성된 가공할 무기로 침략자를 공격하려는 장군의 파멸과, 지구의 영혼을 통해 외계인들의 유령을 물리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납니다. 이런 스토리를 생각해 본다면 주인공들에게서 영혼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첨단 테크놀로지는 그들에게 실제인간에 가까운 육체를 주었지만 영혼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감독은 왜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메세지를 경구로 삼지 않았던 걸까요. 그저 외양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테크놀로지만으로 인간을 창조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요. 그러나 아직 실망하기는 이릅니다. 환상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니까요.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통해 현실을 현실 그대로 보여줬다면, 멜리에스가 현실의 소품을 이용해 환상을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환상을 현실로 옮기는 상징적인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찾게 되었을 때, 아마도 환상은 현실로 이루어지겠지요. 스스로 창조주의 지위에 오르고 싶어하는 인간의 환상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꿈꾸는 '최후의 환타지'가 되지 않을까요. /서혜정 hjkara@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