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점 국립대인 ㄱ대는 올 하반기에 전임교원 23명을 새로 임용했다. 국립대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임용 규모였다. 갑자기 왜 이렇게 교수를 많이 뽑은 것일까. 대학구조조정의 여파 때문일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그 원인은 상당히 엉뚱한 곳에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5월 ‘국립대 교원 채용 목표 예고제’ 공문을 보내 내년 2월까지 배정받은 교수 정원의 99%를 충원하지 않을 경우 정원을 회수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3명을 신규 채용했음에도 ㄱ대학은 정부로부터 배정받은 교수 정원보다 여전히 8명가량 모자란다고 교과부는 설명했다. 교수 티오가 부족하다고 볼멘소리를 해 온 대학의 한결 같은 입장을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학교만이 아니라면, 도대체 교수 정원을 배정받고도 뽑지 않은(혹은 못한) 인원이 얼마나 되기에 교과부는 정원 회수라는 초강수까지 둔 것일까.
4월 1일자 기준으로 전국 40개 국립대(서울대 제외)의 전임교원 미충원 인원은 총 448명. 교수 정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대학 당 평균 11명을 뽑지 않고 있는 셈이다. 유형별로는 일반대학이 350명으로 가장 많고, 교대가 57명, 산업대 36명, 전문대 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충원 10명 미만인 대학이 22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10명 이상 20명 미만인 대학은 13곳, 20명 이상을 뽑지 않고 있는 대학은 5곳이었으며 50명 이상인 대학도 있었다.
그렇다면 정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임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적임자가 없어서’다. 우제창 목포대 교무연구처장(전국교무처장협의회 수석부회장)은 “거점 국립대나 교대는 신임교수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지원자의 경쟁력이 낮은데 정원을 갖고 있다고 해서 뽑았다가는 각종 대학평가에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뽑고 싶어도 못 뽑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3년간(2008~2010년) 국립대 종합감사 결과를 보면 다른 사정도 있는 듯하다. ㄴ대학의 경우 2009년 종합감사에서 임용예정 후보자 5명을 선정해놓고도 해당 학과에서 명확한 사유 없이 적임자가 없다는 의견을 제출하자 전형위원회에서 전형절차를 중단하고 채용하지 않아 총장 등이 경고를 받았다. ㄷ대학 역시 2006년 하반기 전임교원 신규임용 때 학과심사와 본부심사 결과 다르다는 이유로 재심요구 절차 없이 임용 후보자 3명 가운데 아무도 임용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총장 등이 주의를 받았다.
2010년 종합감사를 받은 ㄹ대학은 정당한 임용절차를 거친 1, 2순위 후보자를 특별한 사유가 없는데도 적임자를 찾을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면접 대상자로 추천하지 않아 기관경고를 받았다.ㄹ대학 최종 후보자였던 A씨는 “교수들 간 알력과 자기사람 심기 등의 폐해가 크다”며 “한 사람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뽑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해마다 어렵게 신규 정원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데 막상 배정받은 정원만큼도 교수를 임용하지 않고 시간강사 등을 쓴다는 것이 말이 되냐”며 “정말 어쩔 수 없이 뽑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배정받은 정원의 99%를 채우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미충원 정원은 회수해 필요로 하는 대학에 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