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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금상> 삼박사의 편지

안상문 경기 행남초 교감


삼박사를 만난 것이 벌써 삼십 여 년 전 일이다. 그동안 세상은 너무나 변했고 개인적인 우여곡절도 여러 번이었다. 즐거운 일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삼박사를 생각하면 내가 이래서는 안 되지 하고 다시 일어서곤 한다. 특히 꼬깃꼬깃 구겨진 깍두기공책을 찢어서 연필로 쓴 편지 한 장을 꺼내어 읽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잊었던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감상에 빠져든다.

‘선생님, 안녀하셔요?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는 요즘 1학년 아이들이 쓴 글자보다 훨씬 삐뚤어진데다가 받침마저 엉망이다. 더군다나 몇 줄 되지도 않아 이제는 달달 외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 편지는 평생을 지녀야 할 것 같은 믿음과, 내가 힘들 때 용기를 주는 신비한 마법의 힘을 지녔다. 짤막한 편지 속에 담긴 수많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삼박사, 지금도 잘들 지내고 있을까? 문득 편지글과 함께 삼박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영현이와 우정이, 광윤이…. 말하자면 그들 세 명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교의 명물들이었다. 교대를 갓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곳이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에 있는 해운초등학교였는데, 처음 6학년을 맡은 학급에서 이들을 만난 것이다. 말을 너무 잘해서 ‘동네 이장’으로 통하는 영현이, 교통사고 후 언제나 막대기를 들고 다니던 ‘공포의 막대기’ 우정이, 너무 얌전해서 결석을 해도 잘 모르던 ‘하얀 천사’ 광윤이….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그때까지도 한글을 못 깨우친 것이었고, 그 덕분에 ‘삼박사’라는 그럴듯한 별명을 갖게 되었다. 교단에 처음 발을 내딛는 나에게 6학년 때까지 한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으나, 시골 학교라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자위를 했다.

그리고 혈기가 넘치는 청년 교사였던 나는 삼박사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기 위해 3월 초부터 알고 있는 작전을 총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1학년 선생님께 얻어 온 국어책을 펴고 처음부터 깍두기공책에 소리를 내며 쓰기를 시작했다. 다행히 첫 단원은 단어수도 몇 개 안 되는 데다가 쉬운 낱말들이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단어인 ‘우리’를 수십 번 쓰게 한 후, 다음에 나오는 단어인 ‘아가’를 쓰면 이상하게도 조금 전에 배운 ‘우리’를 잊고 마는 것이었다.




콩 볶듯 돌아가는 6학급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개인지도를 했건만 한글 깨우치기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시간 확보가 관건이라 생각되어 공부가 끝난 후 매일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매달리다시피 했건만 성과가 없었다. 너무 무섭게 몰아붙이는 것이 아닌가 반성하면서 자상하게 설명을 해 주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말도 잘하고 수학도 어느 정도 하는 영현이가 ‘아가’를 배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아’로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어 ‘ㄱ, ㄴ, ㄷ…’을 가르치고, 이어서 ‘ㅏ, ㅑ, ㅓ…’를 익히게 했다. 내 계산으로는 ‘ㄱ’과 ‘ㅏ’가 합쳐서 ‘가’라는 글자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삼박사에게는 ‘ㄱ, ㄴ, ㄷ…’자체를 익힐 수가 없었다. 자음의 소리와 의미 이해는 물론 그 순서를 익히기가 어려웠고, 더구나 ‘ㅏ, ㅑ, ㅓ…’까지 학습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1학년 아이들이 흔히 사용하는 낱말 카드를 사용해 보기로 하였다. 학교 그림이 있고, 그 아래에 ‘학교’라는 단어가 제시된 카드를 되풀이하여 사용하니 어느 정도 효과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이것도 삼박사의 망각 증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하도 답답하여 퇴근 후에 사택에 불러 과외지도를 하기로 했다. 몸도 마음도 정신이 없는 초년병 시절이었지만, 이 아이들을 구제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라 생각하고 삼박사와 지속적으로 씨름했다. 분명 이 아이들에게는 한글 미해독 이전에 무엇인가 원인이 있을 것 같아 그것을 끝까지 밝혀내고자 하였다. 열정만으로는 그 이유를 밝혀낼 수 없었으나 당시 내가 터득한 것은, 세상의 모든 이치는 그것을 깨닫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삼박사는 한글을 깨우쳐야 할 결정적 시기인 1학년 때 한글을 익히지 못했기에 그 후유증이 계속되었고, 그 이후 학년에서도 그들은 한글 모르는 아이들로 깊게 각인이 되었다. 이 사실을 삼박사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어떻게 보면 그 현상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들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지 않으면 영영 왜곡된 길을 갈 것 같은 조바심 속에 뒤틀린 허상을 바로 잡고자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순진하고 착한 삼박사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나름대로 열심히들 따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글을 깨우친다는 것은 한글을 만드는 것만큼 힘든 일이었다. 무조건 많이 쓰고 읽히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동화를 읽어 주거나 테이프를 들려주는 등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성과를 얻어내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최후에는 내가 직접 나서는 대신 반 친구들의 도움을 얻기로 했다. 우선 삼박사의 짝을 바꾸어 영현이 옆에는 반장인 병구를, 우정이 짝은 회장인 기정이를, 광윤이 옆에는 부반장인 현숙이를 앉혔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책임지고 삼박사를 지도하도록 당부를 했더니, 친구들은 나보다도 훨씬 더 열심히 그들을 가르쳤다. 심지어 병구는 쉬는 시간도 없이 영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받아쓰기를 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시도 또한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으니, 나중에는 지치고 힘들어 서로에게 미안한 감정만 가질 뿐이었다.

이렇게 삼박사와의 지루한 전쟁과 방황을 거듭하면서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졸업을 하게 되었다. 뭔가 허전하고 당황스럽게 맞이한 졸업식 날, 나는 뜻하지 않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 졸업식을 마치고 사진 촬영까지 끝날 무렵, 삼박사가 주뼛주뼛 다가오더니 종이 한 장을 내미는 것이었다.

선생님게!
선생님, 안녀하셔요?
그동안 고마워요! 글자 모라 미안해어요.
선생님! 사랑해요. 그리고 안녕이 게서요.
영현, 우정, 광윤이가 써슴니다.

순간 나는 뒤로 돌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년간의 수많은 기억과 사연들이 밤하늘 별빛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삼박사는 이 편지를 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틀리고 엉터리인 한글이지만 이것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고생들을 했을까? 어설프게나마 삼박사는 한글을 깨우친 것인가?

그 편지를 간직한 지가 30년이 훌쩍 넘었다. 단 몇 줄의 편지이긴 하지만 이 속에는 흑백 사진과도 같은 여러 속내가 담겨져 있다. 사진 속 과거처럼 삼박사에게는 다른 아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고깃배를 타면서 소라를 잡아 삶아서 내 자취방 앞에 몰래 놓고 갔던 광윤이…점심시간이면 목장갑을 끼고 아이들 도시락을 차례로 데워주던 영현이….겨울철이면 아침마다 장작을 미리 잔뜩 얻어다 쌓아두고 난로 피우던 일을 도맡았던 우정이…. 반찬 없이 자취하는 내게 겨울이면 말린 망둥어를 가져와 건네면서 부끄러워하던 영현이의 눈동자가 갑자기 눈에 선한 것은 왜일까?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수십 번 편지를 드려다 볼 때마다 삼박사의 성장과 진로에 대해 가슴을 졸였다. 그들에게 한글을 제대로 깨우쳐 주지 못한 것이 교사로서 응당 책임져야 할 업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우려와는 달리 그들은 정말 잘 자라 주었다. 힘들었겠지만 셋이 모두 시골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더니, 영현이는 일찌감치 자동차 기술을 배워 지금은 어엿한 카센터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사람 사귀는 수단이 뛰어난 우정이는 이것저것 장사를 하다가 지금은 청소 용역회사 팀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업한다고 여기저기 손을 대보다가 실패를 거듭했던 광윤이는 이제 부동산 회사에 취직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들 잊고 지낼 때도 있었으나, 영현이가 꾸준히 연락을 하면서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결혼식 때, 승진을 했을 때 삼박사는 누구보다 먼저 나에게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명절 때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교감으로 승진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와 축하해 준 것도 삼박사였다. 어린 시절 배움의 시기를 놓쳐 성장하면서 많은 좌절을 경험한 삼박사지만, 이제는 떳떳한 사회인으로서 굳세게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나는 오랜 기간 삼박사의 곁에서 아무 탈 없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남모르는 여러 가지를 느끼곤 한다. 그래,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공부를 다 잘할 필요는 없을지도 몰라. 비록 하찮은 일을 하더라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가장 올곧은 삶의 방식이며, 이것이 공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생살이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다음 주에는 오랜만에 삼박사와 만나 소주잔 기울이며 잘 자라주어 고맙다는 말이나 전해야겠다. 나 모르게 반찬을 해 준 덕분에 자취 생활을 잘했다는 감사의 표시도 하고, 한겨울에 개구리를 잡아와 실감 나는 실험을 한 추억도 되살려 보아야겠다. 이제 교사의 길을 걸으며 짊어졌던 업보를 조금씩 내려놓을 때가 되었나 보다. 그러나 지울 수 없는 흔적마저 운명이라 생각하는 노승의 심정으로 낡은 편지를 다시 고이 접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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