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생활을 한 지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신학기만 되면 내 마음은 갓 시집온 새색시 마냥 콩콩 뛴다. 올해는 어떤 살구 같은 새콤한 웃음들을 만날까. 입학식 며칠 전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꼭 움켜쥐고 이불 속에서 잠을 이리저리 뒤척인다.
그러다 입학식 전날 하얀 봉투에 일급비밀이라도 들어있는 듯한 학급명단을 받아 떨리는 손으로 펼쳐 들면, 까만 활자들은 꼬물꼬물 눈으로 기어들어 온다. 그 꼬물거리는 활자들은 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활자의 주인공들을 만날 때까지 또 다른 행복한 설렘에 빠진다.
드디어 입학식 날, 궁금증에 단걸음으로 달려가 우리 반 아이들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본다. 어떤 얼굴들일까? 입학식 때 학교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해도 신입생들은 여기저기를 자꾸 낯선 눈으로 살핀다. 그 눈빛들을 인솔해 교실에 와도 여전히 아이들은 나에게 어리둥절한 눈빛을 던진다. “안녕, 올해 일 년 동안 너희들과 함께 할 담임이야….” 내 소개를 다시 간단히 하면, 그제야 저희들끼리 수군대며 입을 손으로 막고 킥킥 웃어댄다. 어쩌면 내 깻잎 머리 모양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중학교 3학년을 몇 년 가르치다 신입생을 만나면, 남자아이들이지만 꼭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을 만큼 귀엽다. 신입생들이 살구같이 배시시 수줍게 웃는다면, 2학년들은 복숭아같이 웃어대고 3학년은 수박같이 웃는다. 키도 입학식 때 보면 학년마다 마치 계단같이 큰 층이 난다. 아이들의 키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마치 푸른 무같이 잘 자란다. 교복도 1학년 때는 도포를 입고 다니다, 2학년이 되면 그래도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그런데 3학년이 되면 윗옷은 팔이 쑥 나와 반팔 같고, 바지는 7부 바지를 입고 다닌다.
그렇게 신입생들은 살구웃음과 푸른 꿈으로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다. 시간마다 교과 선생님이 바뀌는 낯설음과 얼떨떨함으로 3월을 보낸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1학년들은 별로 재미없는 유머에도 까르르 새파랗게 웃음을 쏟아내며 자지러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조례․종례 때도 수업시간에도, 웃음을 잃고 교실 구석에 박혀 있는 얼굴 큰 아이 하나가 있었다. 입학식 2주일 후, 교우조사를 해보니 모두 그 ‘한’이란 아이를 싫어했다. 36명 중, 30명의 아이들이 한이를 멀리했다. 한이는 우리 반의 낯선 섬으로 떠다니고 있었다.
미리 알지 못했던 미안함과 그동안 상처를 움켜 안고 부초처럼 학교생활을 했을 한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3월 말부터 한이는 하루에 한두 번씩, 쉬는 시간만 되면 울먹이며 찾아와 하소연했다. “친구들이 놀려요. 준이가 괴롭혀요. 태섭이가 때려요….” 처음에는 괴롭힌 학생만 불러 상담하고 타일렀다. 조․종례 때마다 반 아이들 전체에게 ‘소외되고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는 것이 어떤 기쁨보다도 크다’, ‘더불어 살아야 이 세상이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진다’ 등의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오히려 머피의 법칙만 활성화됐다. 한이의 하소연은 점점 길어졌고, 마침내 교실 바닥에서 매일 엉엉 울음을 쏟아냈다. 괴롭히는 아이들 숫자마저 하나둘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자기 이름만 겨우 쓰는 두 명의 아이와 친구끼리 싸움을 붙여 놓고 뒤에서 조종하며 희열을 느끼는 운동부 아이, 실내화를 다섯 번이나 구입해 줘도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 수업 시간에 산만한 서너 명의 아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15년 정도 담임을 했지만, 이렇게 정신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마 운명의 신이 교사로서 더 성숙할 수 있도록 종합선물세트를 준 모양이었다.
다른 교과 선생님들도 모두 우리 반 수업을 하고는 놀라 어리둥절해했다. 교과교실제를 운영하고 있는데도 쉬는 시간 이동할 때, 사각 지역, 화장실에서 사건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해결책으로 토요일 오후에 반 전체 축구시합도 하고, 짜장면도 같이 먹고, 학급 등산대회도 열었다. 상담일지도 꼬박꼬박 쓰면서 보름에 한 번씩 학급 자체 설문조사를 했다.
그랬더니 두더지처럼 숨어 있던 한이 문제가 얼굴을 조금씩 내밀었다. 설문지에 나온 가해학생과 학부모를 불러놓고, 방과 후 저녁 늦게까지 일일이 상담도 많이 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학교폭력 문제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삼위일체 되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이 문제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웅크리고 숨어 있던 다른 왕따, 빵셔틀 등의 문제도 나왔고 다행히 조기에 막을 수 있었다. 나아가 다른 반 아이들 문제와 학년 전체문제를 연결고리처럼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게 됐다. 몇 달간 반복해서 설문조사와 상담을 계속하다 보니, 한이의 울음도 자연히 줄어들었고 어리둥절하던 교실도 정신을 차렸다.
그해 여름은 그렇게 한이 문제처럼 뜨겁게 흘러갔고, 방학을 맞아 소멸되는 듯 했다. 2학기를 맞아 설문조사 횟수도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 그런데 10월 중순 어느 날, 한이가 점심시간을 마치고 가방이 없다고 울먹이는 것이었다. “한이야, 잘 찾아보렴. 어디 있겠지. 친구가 장난삼아 숨겼겠지. 기다리면 돌려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남학교라 가끔 짓궂게 장난치는 애들이 친구 신발이나 가방을 옆 반에 갖다 놓는 경우도 있는지라, 곧 나타날 줄 알았다. 한데 어찌 된 일인지 가방은 종례 때가 돼도 나타나지 않았다. 종례를 멈추고 아이들과 함께 가방을 찾아봤으나 가방은 꽁꽁 숨은 채 나오지를 않았다.
그때 한 아이가 반쯤 물에 젖어 몸이 축 늘어진 한이 가방을 들고 왔다. 화장실 양변기에서 건져 왔다고 했다. 순간 난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가방 안을 보니 책과 공책은 물을 반쯤 먹어 검은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다른 물건도 아니고 가방을 변기통에 넣다니….
바로 설문 조사를 했다. 자수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고…. 두 번, 세 번 설문조사를 했지만, 자백하는 학생은 없었다. 실망감과 자책감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덮쳐왔다. 헐떡헐떡 거품까지 내며 엉엉 우는 한이 모습을 보니,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대체 얼마나 미워했으면 이런 짓을 했을까? 아이들을 보내고 빈 설문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나의 머리는 백지가 되어갔다.
한이 어머님을 불러 상담하면서 저녁 늦게까지 사죄드렸다. 가슴에 새겨진 상처가 새 책과 새 가방으로 치료될 리는 없겠지만 다음날 한이의 책과 가방을 모두 새것으로 사줬다.
마음을 다시 고쳐먹고, 꼬인 실타래를 처음부터 풀어야 했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상담하고, 타이르고…. 한이 어머님도 바쁜 시간을 내 방과 후, 교실에 와서 아이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해줬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방인으로 반에서 섬처럼 떠다니는 한이가 변해야 했다. 한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한이에게는 좋은 점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말을 빌리면, 고칠 점도 있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하고, 가끔 자신보다 더 약한 아이를 괴롭히기도 했으며 신경질과 짜증을 자주 내는 게 문제였다. 한이는 분노․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집단으로 괴롭히는 아이들도 문제지만, 같이 밥도 먹고 드라이브도 하면서 한이부터 변화시켜 보기로 했다.
“한이야, 너 자신부터 한번 변해 보렴. 친구에게 웃으면서 마음을 열고 다가가 보렴.” 1학년을 마칠 때쯤, 드디어 한이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섬에서 울며 웅크리고 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2학년이 되어 다른 반이 됐는데 수업시간에 봐도 그늘진 얼굴은 없었다. 3학년이 되어서는 얼굴에 여유로운 웃음꽃까지 피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이를 그렇게 졸업시킨 후, 살구 같은 새콤한 웃음을 만나고 싶었는데 올해 다시 수박같이 웃는 덩치가 큰 3학년을 맡았다. 3학년은 능글맞게 웃고 조금 무뚝뚝하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 반에서 얼굴이 낯선 또 다른 한이를 만났다. 한이와 성은 같았지만 키는 좀 작았고, 이름은 ‘국’이었다. 개학 첫날부터 울먹이며 신경질적으로 찾아와 하소연했다.
“친구들이 놀리고, 우혁이가 괴롭혀요. 학교 오기 싫어요. 아이들이 모두 싫어요.” 한이 때문에 쌓인 노하우도 있었지만, 국이를 1, 2학년 때 멀리서 조금은 봐온지라 당황하지는 않았다. 3년 전의 한이처럼 국이는 낯선 섬으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바로 설문조사를 해 국이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불러 매일 타이르고 상담했다. 그렇게 한 효과 때문인지 따돌림과 괴롭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다. 하지만 국이도 한이처럼 스스로 변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변하도록 도와줘야 했다.
장단점을 지적해 주고, 먼저 친구들에게 웃으면서 다가가라고, 친구들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자제하고, 신경질적으로 말하지 말고 차분히 이성적으로 이야기하라고 조언했다. 사실 괴롭히는 아이들 중에서 그렇게 나쁜 아이는 별로 없었다. 그냥 자신 내면에 잠자고 있는 못된 사디즘을 살그머니 꺼내 보이려 했을 뿐이다.
한번은 말썽꾸러기 아이가 국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 국이를 전학 보내고 그다음 싫은 친구 보내고, 또 보내고, 보내고… 그럼, 누가 남겠니? 인류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모두 협동의 힘이란다.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 주고, 서로 다른 빛깔과 향기를 존중해줬기 때문이지. 이 시간에도 땀 흘리는 농부와 펄펄 끓는 용광로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너희들이 맛있게 밥 먹고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거야…. 우린 모두 소중하고 누구나 귀한 존재란다.”
요즘은 국이도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적응하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오늘도 나에게 불만을 한 사발 쏟아 놓고 갔다. 다른 아이들은 또 여기저기서 역차별한다고 불만을 토해낸다. 그 사이에서 하루에 얼굴을 수십 번씩 바꿔가면서, 나는 교실에 웃음 밭을 만들려고 꽃들을 손질하고 쓰다듬는다.
이제 머잖아 국이도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이다. 많은 고교를 알아보고 있지만, 국이에게 웃음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그런 학교를 추천하고 싶다. 국이도 섬에서 스스로 일어나 옆 사람에게 다리를 놓고 다가갔으면 좋겠다. 바다가 조금은 거칠고 바람이 불더라도, 용기를 갖고서…. 자신의 섬에서 자신을 밀어 올려 국이만의 향기와 빛깔을 가진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