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숟가락을 마이크처럼 들고 중얼거리면서 방송기자 흉내를 내곤하던 딸이 입학사정관전형으로 대학에 가서 언론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3학년이 되고 본격적으로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메인이벤트의 종이 울렸다. “학생부는 바꿀 수 없는 내 딸의 역사교과서니 그렇다 치고, 자기소개서나 학업계획서, 포트폴리오는 그동안 꾸준히 자신이 준비해왔으니, 이제는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생각 한 줄기.
“교사추천서는 제3자가 내 딸을 본 시각에서 쓰는 글 아닌가?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닌.” 머릿속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어느 선생님이 어떻게 써주셔야 좋은 것일까? ‘어떻게’는 어쩔 수 없더라도, ‘어느’ 선생님께 부탁드려야 할지는 선택할 수 있는 것. 딸과 함께 선생님 한 분씩 짚어보던 시절을 되돌아본다.
첫째, 교장선생님 혹은 교감선생님.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리처드 바크의 소설에 나온 구절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제일 높은 선생님이 평가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교사추천서는 학생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관찰한 교사의 기록이다. 교장선생님은 추천의지는 충만하지만, 제일 잘 알 수는 없지 않은가. ‘높이 날면 멀리 보인다. 그러나 잘 안 보인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 다음은 고3 담임선생님. ‘당연히 3학년 담임선생님께 부탁드리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거의 대부분 한 학기 정도만 가르친 경험이 전부. 특별하거나 대단한 학생이 아닌 경우에는 잘 써주고 싶어도 쓸 거리가 별로 없게 마련일 터. 게다가 대학이 표절검색시스템도 도입했다는데 수십 명의 추천서를 쓰는 경우 같은 단어와 표현, 비슷한 문장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법.
셋째, 딸을 제일 사랑해주시는 선생님. 처참한 성적이 뻔히 나와 있는데도 최상위권 학생이라고 평가해 주시는 고마운 선생님. 이 경우 진짜 추천할 만한 사항들조차 거짓으로 평가받거나 심지어 무효처리 될 수 있다. 입학사정관이 추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부를 기본으로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같은 다양한 전형자료를 보기 때문이다.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내용이 궁합이 맞아야 할 것은 당연할 터.
넷째, 동아리 선생님. 재능과 꿈이 같은 아이들이 모인 곳. 필자의 딸은 당연히 방송반이었다. 문제는 거의 모두 방송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니, 선생님께서 써주시는 내용도 상당부분 겹치게 마련. 잘못하면 ‘모범양식’에 이름과 실적과 단어만 바꿔 끼우는 추천서가 될 수도 있다. 위험!
정답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선생님’이었다. 자기소개서가 주관적이라면 추천서는 객관을 잃지 않은 주관의 눈으로 써야 하지 않을까? 입학사정관은 학생부에서 기록으로 남은 데이터를 보고, 자기소개서에서는 지원자의 열정과 스토리를, 추천서에서는 진실하면서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지원자의 특성과 재능을 증명해주는 선생님의 증언을 듣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에 지원자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따뜻한 가슴만큼이나 냉철한 사고를 가진 선생님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결론.
그렇다면 칭찬 뿐 아니라 부족한 면도 솔직하게 적어 줄 있는 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학생을 꼭 뽑아야 하는지 고개를 끄떡이게 설득해주실 수 있는 선생님이 바로 정답.
딸의 결론은 바로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오랜 시간동안 알아오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며, 모의유엔대회를 지도해 주시고, 교과목까지 가르치셨던 선생님. 자신의 성격도, 성적도, 장점도, 단점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선생님께 추천서를 부탁드리겠다는 것. 학생부에서 볼 수 없는 인성과 품성, 잠재력을 사랑과 진정한 관심으로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차별화된 이야기로 들려주실 수 있는 선생님이 계신 것은 우리 가족의 크나큰 축복이었다.
자신이 추천서를 써 줄 학생과 많은 대화를 한 것은 물론이고 교과담당 교사의 말도 들어보고, 학생부도 꼼꼼히 살펴보고, 자기소개서도 읽어보고, 학생의 꿈도 공유하고, 전공에 대한 적성과 활동, 학업계획서도 읽어보고, 친구들과의 관계, 모의고사, 내신 성적의 변화, 역경과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해왔던 노력, 봉사활동뿐 아니라 미니홈피와 페이스북 내용까지 오랜 시간동안 꼼꼼히 잘 알고 있는 선생님. 바로 인생의 멘토, 진정한 스승이 교사추천서에 가장 적합한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