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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2012 교단수기 공모 은상> 꿈과 희망의 청소년 농부학교 '씨앗'

휴~ 한숨부터 나온다. 저녁 8시, 두 번의 김장 김치 배달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서 내쉬었던 한숨이다. 우리 청소년 농부학교 ‘씨앗’의 일년 중 가장 큰 축제이자 이벤트인 사랑의 김장 김치 담그기를 마무리하면서 성취와 보람, 또 무사히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안도와 고단함의 표현일 것이다. 횟수로 2회째를 맞은 사랑의 김장담그기 행사, 참 무모하기도 하지만 정말 큰 보람과 감동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활력이다. 나만의 노력으로도, 학생들만의 노력으로 쉽지 않으며 나와 학교, 학생, 학부모가 혼연일체가 되어 헌신과 노력으로 이루어내는 소중한 결실이다. 김장 담그기 행사를 끝으로 올해 농사는 갈무리다.

작년부터 방과후 학교에 아이들과 농사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교무실 안에만 있는 것이 참 무료했다. 새로운 교육 모델과 방향을 고민하던 차에 학교 인근에 놀고 있는 밭이 보였다. 물론 우리 학교 땅이다. 그동안 마을 주민이 임대해 농사를 지었다가 학교에서 실습지로 사용하려고 묵히고 있었던 밭이었다. 약 400평 규모라고 했다. 지금은 시작했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빼도 박도 못하는 입장이지만 400평이 정말 큰 것인지 알았으면 감히 농사 실습반을 운영하겠다고 했을까 할 정도로 참 무모했다. 원래 세상 일은 이처럼 철없고 무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 해 동안 묵혔던 밭은 온갖 잡풀과 쓰레기로 뒤덮여 있어서 이곳에서 채소와 작물을 키울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나조차 농사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으며 농기계조차 없었으니 앞길이 막막했다. 생명의 소중함이니, 생태적 감수성, 녹색교육, 신성한 근로와 땀의 의미 등등 그 취지와 목적은 정말 좋았으나 맞닥뜨린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개학 후 공강시간과 종례 후 심지어 주말 동안에도 잡풀을 뽑고 태우며 쓰레기를 제하면서 드디어 밭다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이름하여 ‘희망꿈터’이다. 나와 우리 아이들의 희망과 꿈을 가꾸고 이루는 공간이 것이다.

방과후학교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학생들을 모집했다. 그 대상은 1학년이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여 아직 앳된 모습을 보고 과연 힘든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1년만 하고 끝낼 프로그램이 아니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시작한 만큼 1학년이 가장 적합하였다. 농사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년 농사 지은 사람과 10년 농사 지은 사람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일 것이며 또 10년 농부는 평생 농부에 비할 수 없다. 처음 농사를 시작하는 1학년 학생들은 아직 서툴고 경험이 없으며 우왕좌왕하겠지만 그 녀석들이 2학년이 됐을 때 1학년 후배들한테 자기의 경험과 노하우를 잘 전해줄 것이고 또 3학년이 됐을 때 그 경험은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보처럼 후배들에게 잘 전수할 것으로 생각했다.





농부학교 학생들을 모집한 결과 여학생 7명과 남학생 13명이 자원했다. 힘을 써야 하는 농사다보니 여학생의 참여는 저조할 줄 알았는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장화를 구입하고 비료, 퇴비, 농기구 등의 농자재를 구입해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다. 활동 시간은 화, 수, 목 3일 하루에 45분씩 했다. 창고에서 장화를 신고 텃밭까지 가는 시간을 빼면 채 30분도 활동하지 못했다. 할 일은 많은데 화살같이 가버리는 시간은 늘 아쉽기만 했다. 종종 수업이 끝나고도 남겨서 못다 한 일들을 하기도 했다.

퇴비와 비료를 주고 난 후 마을 이장님의 도움을 받아 트랙터를 이용하여 밭을 갈고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본격적인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일 년 농사의 시작은 감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장 먼저 심은 것은 감자였다. 씨감자를 사다가 평소 댁에서 농사를 짓는 학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감자 자르기를 했다. 처음이라 서툴게 자른 씨감자를 보면서 과연 이게 감자로 온전히 자랄지 걱정이 됐다. 6월말에 처음 수확하는 작물이라 결실이 풍성해야 아이들도 지금하고 있는 이 힘든 일에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하다면 1학기를 끝으로 농사에 대한 동력을 금방 상실할 거 같았다. 감자를 심고 틈이 날 때마다 밭으로 달려갔다. 인근 마을 어르신들이 심은 감자는 싹이 나서 올라오는데 우리 감자는 여전히 감감 무소식에 어찌나 애간장을 태우던지. 얼마 후 우리 ‘희망꿈터’ 텃밭에서도 감자의 초록색 새싹이 수줍은 듯 고개를 쳐들었다. 그것도 감자 심은 거의 모든 두둑 위로 올라왔다. 나와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1학기 봄에는 감자 심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쌈채소와 고추, 호박, 가지, 파프리카, 마, 열무, 대파, 고구마, 완두콩, 강낭콩, 땅콩, 쥐눈이콩, 서리태, 오이, 고수, 아욱, 근대, 들깨, 토란, 옥수수, 야콘, 스위트바질 등 될 수 있는 한 많은 작물들을 심어 봤다. 이 기회를 아이들에게 다양한 농작물을 통해 알려 주고 싶었고 어떻게 심고 가꾸며 수확하는지 또 어떻게 음식과 요리로 활용될 수 있는지도 가르쳐주고 싶었다. 나도 다양한 작물을 키워 보면서 작물의 생리를 이해시켜 주고 싶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농사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인근 마을 어르신들과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양가 부모님, 농사 관련 책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진행됐다. 그러면서 여러 쌈채소를 솎아주면서 새싹비빔밥을 같이 해먹고, 갖가지 쌈채소로 삼겹살 파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또 키우고 가꿔온 농작물을 선생님들께 판매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2학기 가을로 접어들면서 심는 가짓 수가 많지 않았다. 대부분 김장을 위한 작물들이었다. 포기배추를 비롯하여 김장무, 갓, 쪽파, 당근 등이었다. 가을에는 심는 것 대신 수확의 계절이었다. 콩과 들깨를 털어 수확하였고 토란이며, 야콘, 고구마, 땅콩 등을 캐냈다. 전혀 농약을 주지 않고 영양분도 충분치 않았으며 많은 잡풀 속에서 힘겨웠을텐데도 무럭 무럭 자라 줘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맞게 해줘 고마웠다. 특히 고구마를 캐면서 흙만 털어내고 우적우적 씹어 먹던 생고구마의 맛과 밭에 장작불을 피워 먹은 군고구마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그래도 농부학교의 백미는 뭐니 뭐니해도 작년 11월 11일 실시한 김장 담그기 행사였다. 늦여름에 김장 배추 500여 포기와 무 500개를 심어 김장 담그기 행사를 준비했다. 물론 담근 김장은 우리 학교의 어려운 학생들과 월롱면과 금촌1동의 주민센터를 통해 우리 지역의 독거 노인 분들께 전하기로 했다. 동아리 학생들과 교사들, 학부모들이 한마음이 되어 400여 포기 넘는 김장을 담궜다. 또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김장과 함께 쌀 한 가마도 나누는 사랑을 실천했다.

학교 일과 병행하면서 농사 실습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쉬운 길도 있는데 너무 힘들어 잠시 그만 둘까 하다가 봄의 생동과 외침이 나를 다시 밭으로 나오게 했다. 다시 고생의 시작인 것이다.

올 봄은 유래가 없던 봄가뭄에 뜻하지 않은 고생을 많이 했다. 학교에서 호스를 연결하여 거의 매일 물을 주었다. 그 과정에서 ‘씨앗’ 학생들이 참 고생이 많았다. 타들어갈 듯한 봄가뭄을 견뎌내고 잘 자라준 채소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 뿐이다. 그 덕분에 올해도 새싹 비빔밥도 해 먹을 수 있었고 무공해 채소로 학생들과 흥겨운 삼겹살 파티를 할 수 있었다. 또 점심 급식 시간에 선생님들께도 쌈채소를 제공하여 더위에 지쳐 생기가 없었던 입에 기운을 북돋아 드릴 수 있었다.

그 동안 우리가 직접 키우고 가꾼 채소들을 개별적으로 선생님들께만 판매했는데 올해는 학교 운동장에 열린 장터를 추진해 봤다.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구매의 기회를 통해 농사에 대한 관심을 심어주고 싶었고 ‘씨앗’ 학생들에게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긍지와 보람을 심어주고 싶었다. 또 장터를 통해 살아 있는 경제 교육을 몸소 깨닫게 해 주고 싶었다. 씨앗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로 감자를 비롯하여 쌈채소, 풋고추, 아욱, 근대, 감자, 오이 등을 성황리에 팔아 적지 않은 판매 수익금을 올렸다. 물론 그 수익금은 농부학교 운영비와 이번 사랑의 김장 담그기 행사에 아주 유용하게 활용했다. 그 밖에서 지역 사회의 다양한 농사 관련 교육과 체험을 다녀왔다.

사회의 빠른 변화와 정보 통신에 익숙한 아이들이다보니 기다림과 인내에 익숙치 않고 그 과정이 복잡하면 이내 포기해 버린다. 바로 바로 결과가 나와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데에 익숙한 아이들은 처음에 씨를 뿌리고 싹이 날 때까지 몸에 안달이 났다. 매일 물을 주면서 어느 새 돋아난 새싹을 보고 환호성과 감탄을 연발하였다. 그러면서 이젠 느긋하게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아이들이 되어 가고 있다. 땀을 흘리면 진정한 일의 의미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있다. 너무나 자극적이고 화학 조미료 범벅인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져 있던 아이들의 입맛도 원재료의 맛에 익숙해져간다. 더울 때 즉석에서 따 먹는 토마토와 오이의 신선한 맛을 좋아한다.

농사 체험을 하다 보니 농사 경험이 전무했던 우리들에게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 어르신들은 참스승이시다. 때에 맞춰 심을 작물과 심고 가꾸는 방법이며, 수확하는 법까지 세심히 알려 주신다. 그 전만 해도 아무런 관심도 없이 지나쳤던 어르신들께도 아이들이 머리 숙여 인사하게 되고 서로 따뜻한 말을 건네게 되면서 노인 공경이니 이웃 사랑이니 하며 공허한 외침으로 그쳤던 공부도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됐다. 또 지역 사회에서 생태 연구를 하시는 생태 전문가 선생님도 알게 되었으며 농사와 생태의 중요성에 대한 재능 기부도 틈틈이 해 주셨다. 차후에 우리 마을의 세시 풍속이며 전통 놀이, 짚풀 공예와 전통 발효 음식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크다. 정말 ‘마을이 학교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지역 사회에서 생생한 삶의 경험과 배움을 터득하게 됐다. 좀 더 다양한 방법과 접근으로 지역 사회와 접목이 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몸소 체험하고 살아있는 교육으로 거듭나리라 본다.

농사 체험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것이 학부모의 관계이다. 방과후 학교로 배정된 시간은 한정되어 되어 있어서 제 때 할 일은 많은데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학부모 보람교사 활동을 통해 안면을 익혔던 학부모 몇 분께 밭 일을 부탁했고 틈틈이 시간을 내셔서 같이 하고 있다. 그 분들도 손에 흙을 묻힌 경험이 없던 터라 쉽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도와 주시고 있다. 종종 희망꿈터에서 자란 쌈채소로 선생님들과 삼겹살 파티를 하면서 교사와 학부모의 서먹한 관계에서 누나와 동생 같은 긴밀하고 협조적인 관계로 발전하였다. 사실 작년과 올해 학부모의 든든한 후원과 지원을 바탕으로 다소 무모하였던 김장 행사를 아주 훌륭히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처음 청소년 농부학교 ‘씨앗’ 은 애당초 나름대로 가치있고 의미있는 취지와 목표로 시작했다. 그 취지에 충실하고 목표를 이루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 아이들이 넓은 밭의 부드러운 흙을 만지고 밟고 마음껏 뛰어놀며 기쁨과 행복을 느꼈으리라 본다. 또 땡볕에서 일하면서 땀의 의미를 체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손수 씨를 뿌리고 물을 길어 뿌리고 가꾸면서 내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의 의미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정성껏 가꾼 채소를 팔면서 번 돈의 가치에 대해 평소 용돈으로 받은 돈과는 다른 의미를 느꼈으리라 본다. 김장을 담그면서 평소 부모님의 어려움을 헤아려 보았을 것이며 이웃에게 나눠주면서 이웃 사랑의 마음을 되새겼을 것으로 본다. 아니 지도 교사로서 이런 마음을 우리 아이들이 가졌으면 하는 꿈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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