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2학기 종강 회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일 년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저녁식사 겸 간단한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표정들이 밝고 웃음꽃이 여기저기서 피었다.
그때 한 여학생이 늦게 회식 장소에 들어왔다. 친구들이 다가가서 그 학생을 반겼다. 나도 반색을 하며 그 학생에게 말했다.
“근데 A는 왜 안 왔어?”
A는 그 학생과 늘 함께 다니는 단짝 여학생이었다. 교실에서나 교정에서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아온 터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A의 안부를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무척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 학생이 그냥 갑자기 눈물만 흘리는 것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옆의 친구들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A에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겼나 하고 불안해졌다. 약간 조마조마해 하며 그 학생의 말을 기다리는데 학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얼떨떨하고 멍해졌다.
“왜 교수님은 나만 보면 A를 찾으세요?”
나는 이게 무슨 말인가 잠시 독해를 해야만 했다. 그 학생이 눈물을 흘린 것도 이 대답과 관련이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 학생의 대답은 왜 자기가 왔는데 자기를 반가워해주지는 않고 단짝의 안부부터 묻느냐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학생을 볼 때마다 A의 안부를 물은 것 같지 않은데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언제 너를 볼 때마다 A의 안부를 물었어?’라고 반문할 수도 없어 웅얼거리기만 했다.
“늘 같이 다니니까 난 그냥…”
그 학생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고 나는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아 송구한 마음으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곰곰이 되돌아보니 그 학생의 눈물과 항의에도 일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평소에도 내가 그 학생보다 단짝에게 더 관심이 있었는지 몰랐다. 교정에서 둘과 마주칠 때도 내가 무심결에 단짝을 더 반가워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서운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있다가 종강 회식에서 터지고 말았을 것이었다.
하긴 나도 그 학생이 종강 회식 식당으로 들어설 때 일단은 그 학생을 반기는 말을 어느 정도 하고 나서 A의 안부를 물었어야 했는데 보자마자 대뜸 ‘A는 왜 안 왔느냐’고 물었으니 그 학생이 크게 서운할 만도 했다.
나는 너무도 자연스런 질문으로 여기고 무심결에 던진 말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그 일을 통해 더욱 느꼈다. 그리고 둘이서 짝을 지어 다니는 학생들을 대할 때 한 쪽에게만 관심을 두는 듯한 언행을 조심해야겠구나 하고 다짐했다. 둘 다 골고루(?) 반가워하며 관심을 보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언제 항의를 받을지 모를 일이었다.
감정선이 예민한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학생들의 반응으로 크게 당황해 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들도 감정선을 다시금 예리하게 하여 학생들의 섬세한 면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