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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2012 교단수기 공모 은상> 교사는 한없이 넓은 바다가 돼야 함을…

교직 생활을 하며 교사가 한없이 넓은 바다가 돼야 함을 느끼는 해가 있다. 유난히 더운 15년 전 그 해가 바로 그랬다.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는 것은 그때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던 일이 우리 반 아이에게 기저귀 채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워서 차기 싫지만 내색하지 않고 차주는 윤기의 그 마음을 알기에 내 기억에 오래도록 짠하게 남아있다.

윤기는 키가 1학년 또래에 비해 아주 작아 마치 다섯 살로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입학식 날 꽃샘바람이 부는 운동장에 가을 점퍼를 입고, 못 먹어 마른 얼굴에 눈망울만 커다란 모습으로 콧물을 달고 서 있었다. 키 번호를 정해주려는데 윤기에게서 냄새가 난다며 우는 아이도 있고 피하는 아이도 있었다. 난 겨우 착해 보이는 여학생 옆에 윤기를 세우고 일정을 끝낸 뒤 윤기 어머님을 찾았다. 둥글게 무리지어 서 있는 학부모들 저 끝에서 한 서른다섯 살쯤 돼 보이는 작은 키에 통통한 몸집, 뭔가 불만스러운 얼굴의 어머니가 “저예요.” 하며 앞으로 나왔다. 윤기의 크고 맑은 눈망울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조심스럽게 내일 준비물을 말해주는 내게 “알아서 할게요.” 하며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윤기의 손을 끌고 갔다. 엄마의 우악스런 손에 가냘픈 몸이 반쯤 들려져 끌려가면서 윤기는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싱긋 웃어주자 윤기의 눈망울이 커졌다.

일주일 후 교실 자리를 정해주는데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여자 아이들이 서로 윤기 옆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겨우 짝을 정해주면 짝이 된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할 수 없이 선생님과 짝이라며 윤기를 내 옆자리에 앉혔다. 짬짬이 윤기를 살펴보니 종합장은 커녕 크레파스도 없고 한글도 몰랐다.




그리기, 색칠하기에는 관심이 없는데 동요를 틀어주면 가사를 모르면서도 큰 눈망울과 작은 몸을 흔들며 리듬을 따라 했다. 그때는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된 듯 입을 앞으로 모으며 빛나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간혹가다 자신이 하기 싫은 쓰기 학습으로 넘어가면 소리를 빽빽 지르며 온몸이 경직된 채 눈을 치뜨며 발을 굴렀다. 어린아이치곤 너무 심한 분노와 적대감의 표출이라 아이들도 나도 놀랐다. 아무리 달래도 몸이 뻣뻣한 철근덩이처럼 펴지지도 않고 제어가 안 됐다. 겨우 사탕으로 화를 가라앉히게 하고 반을 둘러보니, 다른 아이들이 겁에 질려 뒷문 쪽에 몰려 있었다. 아이들에게 “윤기가 화나서 그랬던 건데 다시 안 그럴 거야”라고 달래고 윤기와 대화를 시도했다.

“윤기, 아까 화났지?” “……”
“윤기야, 학교가 좋지?” “응.”
“선생님도 좋지?” “응.”
“친구들도 좋지?” “응.”
“그럼 화가 나도 소리 지르거나 뒹굴면 안 돼. 그러면 학교 나올 수가 없어” “......”
“화나면 선생님께 소곤소곤 ‘선생님 화가 나요’ 하고 얘기하는 거야. 할 수 있지?” “응”
그렇게 윤기와 첫 번째 타협이 이루어졌다.

며칠 평화가 찾아왔을까, 가나다 쓰기 지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학생의 비명이 들렸다.
“선생님, 윤기가 똥 쌌어요!”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의자에 앉아있는 윤기 다리 옆으로 고동색 물이 흘러나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물똥이었다. 한 여학생이 울음을 터트리자 여자아이들이 따라서 더럽고 냄새난다며 울고 난리가 났다. 손에 고무장갑을 낄 틈도 없이 걸레를 가져다 바닥으로 흘러내린 똥물을 닦아내고 의자를 닦으려 윤기를 일으키니 바지가 축 쳐져 있었다. 급한 대로 의자를 닦고 책 읽고 있으라 하고 윤기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3월 말이어서 수돗물이 차가웠다. 윤기를 화장실에 잠시 세워두고 교실로 뛰어와 커피포트에 물을 가득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윤기네 집으로 전화했지만 신호음만 갈 뿐 받지를 않았다. 할 수 없이 앞자리에 앉은 철민이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간단히 사정 설명을 하고 철민이 팬티와 바지를 좀 가져다주십사 부탁을 했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뜨거운 물과 세숫대야를 가지고 화장실로 왔다. 물똥 싼 바지를 벗기고 미지근한 물에 엉덩이와 다리를 씻겼다. 엉덩이에 흉터가 있었다. 윤기는 창피한지 처음에는 바지를 벗으라고 하자 옷을 꼭 움켜잡았다.

“윤기야, 선생님은 학교에서는 엄마니깐 괜찮아” 하자 엉덩이를 내게 들이밀었다. 윤기와 두 번째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다 씻겨갈 무렵 학교 앞에 사는 철민이 어머니가 옷을 준비해 오셨다. 마른 옷으로 갈아입히고, 똥 싼 바지를 몇 번 물에 헹구고 검정 비닐봉지에 넣었다. 옷을 버려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몇 겹으로 싼 검정 비닐봉지를 책가방에 넣으며 윤기에게 “엄마에게 바지 빨아달라고 말씀드려”하고 몇 번 다짐을 받았다.

교실에 돌아와 보니 이미 아수라장이었고, 시간은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겨우 아이들에게 급식을 먹여 하교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밥을 먹을 기운도 의욕도 없었다. 제일 큰 고민이 ‘앞으로도 윤기가 교실에서 똥을 쌀까’ 하는 것이었다. ‘아니야. 어쩌다 실수 한 거지. 어른도 실수할 때가 있지 않냐. 괜찮을 거야’ 하고 난 스스로에게 주문을 넣었다.

다음 날 윤기를 보기 위해 학교를 찾아온 구청직원을 통해서 윤기의 가정형편을 알게 됐고 윤기가 대변 못 가리는 것이 마음의 병 때문임을 알게 됐다. 즉 언제든 교실에서 똥을 쌀 수 있다는 것과 담임으로서 내가 담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며칠 후 급식에 꼬마 돈가스가 나왔는데 웬일인지 좀 남았다. 맛있는 반찬은 일찍 떨어지기 마련인데 말이다. 윤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싸주면 저녁 반찬으로 먹겠구나 싶어 꼬마 돈가스를 쌌다. 혹 터질까 싶어 여러 번을 싸서 책가방에 넣어주려 책가방을 여는 순간 터져 나오는 냄새......
그것은 썩는 냄새였다. 똥 썩는 냄새......

며칠 전 똥 싸서 갈아입히고 넣어준 바지와 팬티를 아직까지 안 꺼내고 책가방에 방치한 것이다. 자식이 아침과 다른, 낯선 바지를 입고 왔으면 당연히 책가방을 한 번쯤은 열어 봐야 할 텐데 전혀 책가방에 손길을 주지 않은 것이다. 할 수 없이 썩고 있는 검정 비닐꾸러미를 버렸다.

그 후로도 삼사일에 한 번씩 똥을 쌌다. 된똥을 싸면 바지만 벗겨 ‘톡’하고 똥을 변기에 버리면 되지만 물똥이 문제였다. 똥 싸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난 지쳐갔다. 아니 윤기와 윤기 어머니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윤기가 똥을 싸는 날엔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나름 비위도 좋고 애들도 길러봤지만 나날이 밥 먹기가 힘들어졌다.

‘윤기의 딱한 사정은 알지만 다른 아이들도 생각해야 하지 않냐’는 반 어머니들의 충분히 타당한 건의를 들으면서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슨 방법이 있을까? 병인 것을 어찌 고칠 수 있을까? 윤기와 35명의 친구들이 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시간마다 윤기가 대변보러 가고 싶은지 표정만 살필 수도 없는 일이고, 진도도 나가야하는데 수업을 안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시장 통을 거쳐 집으로 퇴근하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기저귀였다. 윤기가 몸집이 다섯 살 정도 밖에 안 되므로 대형 기저귀를 차면 될 것 같았다. 우선 수퍼에서 낱개로 대형 기저귀 2개를 샀다. 다음 날 아침에 윤기를 불러 기저귀를 채우려 했다. 윤기는 안 그래도 더운데 기저귀를 안차려 했다.

“윤기야, 기저귀 차기 싫지?” “......”
“근데 선생님이 네가 바지에 똥을 싸면 치우러 화장실 갔다 오는 동안 친구들이 사고 날 수 있어.” “......”
“그래서 윤기가 기저귀 차면 하교 할 때만 기저귀를 보면 되니깐, 친구들도 안전하고 윤기에게도 좋을 것 같아.” “......”
“기저귀 찰래?”
윤기가 끄덕끄덕했다. 나는 윤기의 머리를 쓰다듬고 기저귀를 채웠다.

그 날 퇴근하며 바로 기저귀 두 박스를 샀다. 한 박스는 교실에 두고 아침마다 윤기에게 채우는 위해, 한 박스는 혹시라도 윤기어머니가 기저귀를 채워주실까 싶어 몇 개씩 윤기 가방에 넣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 겨울이 왔다. 진급을 시켜야 할 때 난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됐다. 윤기가 대변을 가리지 못하는 이유가 정신적 문제고 가정문제가 아직 해결 되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학년이 바뀌어 윤기와 나는 헤어졌다. 3월 어느 날, 앞문에 기사님이 오셨다. 나가 보니 대뜸 윤기를 아냐고 하신다.

“작년 우리 반이였어요.”
“애가 여름 반팔을 입고 열시쯤 학교에 왔는데, 이학년 교실에 안 들어간다며 창고 벽에 붙어 떼를 부리고 있네요. 선생님이 누구냐 하니 선생님 성함을 말해 왔습니다. 좀 같이 가 주세요.”
기사님을 따라 허겁지겁 달려가 보니 창고 벽에 반팔 반바지를 입은 윤기가 꼭 붙어 서있었다.

“윤기야. 안 추워?” “......”
“윤기야, 이제 윤기 선생님은 이학년 선생님이야. 그러니까 이학년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해.” “.....”
윤기는 아무 말 없이 크고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윤기야, 언제든지 선생님 보고 싶을 때는 선생님 보러 오면 돼. 하지만 이학년 수업을 잘 받아야 하는 거야. 옷도 네가 잘 챙겨 입고.”

기사님과 이학년 선생님이 오시는 것이 보였다. 나는 윤기 눈물을 닦아주고, 윤기의 작은 손을 이학년 선생님께 넘겨주었다. 마음이 애잔해져 이학년 선생님 손 붙들고 가는 윤기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윤기야. 잘해.’
이심전심이었을까? 갑자기 윤기가 바지주머니에서 사탕 한 개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기사님이 “애가 선생님 고마워서 드리나 본데요.” 한다. 이학년 선생님은 “부러운데요. 호호” 하신다.

“그래, 윤기야, 고마워”
나는 윤기가 보는 앞에서 꼬질꼬질한 사탕비닐을 벗겨 한 입에 쏙 넣었다. 볼록해진 입을 오물거리며 마음으로 말했다.

‘제대로 해 준 것 없는 나를, 너를 원망했던 나를 그래도 자기 선생님이라고......교사는 정말 한없이 넓은 바다가 돼야 하는데......윤기야, 고맙다. 선생님이 더 넓은 바다가 되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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