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노벨문학상은 캐나다 여성작가 앨리스 먼로에게 주어졌다. 먼로는 8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다.
하지만 그녀의 첫 작품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출판사들이 출간을 꺼린 원고였다. 원고는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온타리오 주 휴런 호 인근 지역 주민들의 일상을 꼼꼼히 묘사해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의 삶을 볼 순 있지만 드라마틱한 스토리 전개도 없고 통쾌한 결말도 없다. 아마도 그런 점들이 출판사들에게 부담을 줬을 것이다.
그녀의 첫 작품집은 15개 단편이 수록돼 있는데 그 중 표제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집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 교습을 하는 마실레스 선생님이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파티에 관한 이야기다.
마실레스 선생은 6월만 되면 그동안 피아노 교습을 받은 제자들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이미 주부가 되거나 엄마가 된 제자들도 있고 엄마를 뒤이어 피아노 교습을 받는 아이들도 있다. 엄마들은 마실레스 선생의 초대에 부담감을 느끼지만 선생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나름대로 신경을 쓴다. 하지만 해마다 파티에 참석하는 인원은 줄어 현재 열 명 가량만 모일 뿐이다.
그 파티는 주로 교습을 받고 있는 아이들의 피아노 연주로 이뤄진다. 엄마들은 파티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데 학생들의 연주가 끝나갈 무렵 한 떼의 다른 아이들이 몰려온다. 그 아이들은 마실레스 선생이 과외로 가르친 근처 그린힐 학교 학생인데 모두 다운증후군 증세가 있는 지적장애아들이다. 지적장애아들의 서툰 연주를 들어야 하는 엄마들의 이중적인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이들을 대하는 마실레스의 선생의 태도’이고 작가도 글에서 강조하고 있다.
마실레스 선생님은 당신이 어린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고 아이들에게서 선한 것이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천성을 간직한 보물고를 찾아낼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다. 독신여성의 감성과 아이들의 선한 본성을 믿는 아동관이 접목된 교육관은 어마어마한 전설 같다. 이렇듯 아이들의 심성이 거룩한 무엇처럼 말하는 선생님이다 보니 부모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한다.
마실레스 선생의 눈에는 정상아들과 지적장애아들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엄마들의 시각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엄마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실레스 선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만도 한데 지적장애아가 연주한 ‘행복한 그림자의 춤’, 그 음악의 힘에 눌려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독일 작곡가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 나오는 발레곡을 편곡한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아이들을 종교처럼 믿어온 마실레스 선생의 일생을 상징하는 피아노곡인 셈이다. 아이들은 원래 선하다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에 마실레스 선생은 비록 실망스러운 일들이 있다 하더라도 행복한 그림자를 끌며 춤추는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믿어준 만큼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마실레스 선생처럼 아이들을 좀 더 믿어주고 그 존재 자체를 받아들여주는 배려심을 더 베풀 때 우리의 아이들도 행복한 춤을 추며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