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만날 집만 짓다 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한옥 부수고 아파트 짓고, 다시 또 부수는 작업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부 수리 또는 리모델링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입니다.”
지난 17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 주재로 열린 교육과정정책자문위원회(위원장 한석수)에서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의 발언이다. 각론을 통한 학교현장의 변화는 이루지 못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론이라는 새집 짓기에만 올인하는 모양을 꼬집은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12일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17일, 19일 정책자문회의를 거쳐 24일 총론의 주요사항을 결정할 방침이다. 24일이면 선택과 필수, 시수와 단위 등에 대한 공방은 일단락된다는 뜻이다. 교육부의 일정대로라면, 2015년 9월까지 총론에서 추구하는 핵심사항들을 각론 즉, 교과교육과정에 어떻게 녹여 낼 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의 성패가 남은 1년에 달려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교총과 정책자문위원회를 통한 안 회장의 강력한 요구 등으로 인해 교육부도 각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14명의 교과별 교육과정 전문직을 늦어도 10월에는 채용할 계획이며, 지난 3월부터 시·도교육청 등에서 13명의 전문직을 2년 한시적으로 파견 받아 각론 보완 및 현장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5년 교육예산에도 32억 원의 국고를 투입할 예정이다. SW교과 등을 위한 교육과정 개발, 교원연수, 교육과정심의회 개최, 대학입시제도 연구 등에 쓰겠다는 설명이다. 유·초·중등 교육예산 39조 7142억 원 가운데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으로 시·도교육청에 배분하는 39조 5206억 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교육부가 운용할 수 있는 유·초·중등교육을 위한 예산은 2000억 원 남짓이다. 이 중에서 32억 원을 교육과정 개정에 투자한다는 것이니,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하지만 이 국고를 제대로 활용할 ‘구조’를 교육부가 가지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교육부의 직제가 교육과정 정책을 유기적으로 통괄할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리과정이 국가교육과정체제에 포함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유아교육정책과는 지방교육지원국에 소속되어 있다. 자유학기제를 담당하고 있는 공교육진흥과 역시 마찬가지다. 자유학기제 정책의 핵심이 교육과정에 있음에도 불고하고 학교정책관 소속이다.
대입제도과는 어떤가. 문·이과 통합을 위한 교육과정개정 공청회와 현장교원중심 국가교육과정포럼 등에서 가장 많이 쏟아진 의견은 대학입시와 연결되지 않은 개정은 무용지물이라는 점이지만, 대입제도과는 대학정책관 대학정책실 소속이다.
이런 지적에 따라 교육부도 부내협업 TF팀을 운영하고 정책 토론회를 정례화하겠다는 교육과정 지원체제 구축안을 내놨다. 교육부 관계자의 표현을 빌면 “편수국 부활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교육과정정책과를 보강하고 있다”지만, 적어도 유아·특수·공교육진흥과의 자유학기제 업무는 창의인재정책관 아래 총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TF팀은 ‘TF’일뿐임을 모르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시·도교육청 직제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흩어져 어느 곳의 업무인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시스템으로는 현장중심, 각론중심의 교육과정 개정은 요원하다. 32억 원이라는 국고 재원을 허공에 날리지 않도록, 내용중심 각론 개정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교육부부터 ‘교육과정중심’ 행정체제로 리모델링을 통해 거듭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