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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2014 교단수기공모 금상>나무가 되고 싶은 아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듣고 또 들어도 참으로 절묘한 말이다. 세상 온갖 꽃들은 그 한 송이 한 송이 화사한 절정을 위해 모진 비바람과 현기증 이는 뙤약볕, 으스름 밤, 오소소한 냉기까지도 고스란히 견뎌내야만 했으리라.

어디 꽃만 그러하겠는가? 요즘 학교들을 속속 들여다볼라치면 그 속에는 회오리치는 소용돌이도 있고, 크고 작은 울림소리들이 섞인 채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수학교인 우리 학교는 유난스레 더 뒤흔들리며 힘겹게 피어나야 하는 꽃봉오리들이 참말이지 많다.

“선생님, 오늘은 모모 때문에 참 속상해요. 이젠 훔치기까지 하는 걸요.”

중학교 2학년 ‘모준식’(가명). 훤칠한 키에 날렵한 외모로 달리기를 잘하는 지적장애 학생이다. 소설 속 주인공 ‘모모’와는 별 연관이 없는데도 내가 준식이를 ‘모모’라 부르는 건, 순전히 이름을 듣는 순간 좀 드문 성씨인 ‘모’의 반복 음이 뜀박질처럼 내 머리 속에 들어와 박혔기 때문이다.

모모와 달리기 최강 라이벌인 같은 반 ‘재훈’(가명). 둘 다 산만하기 짝이 없는데다 늘 만났다 하면 투닥투닥 몸싸움을 하는 바람에 선생님을 곤혹스럽게 해오던 터이다. 그러던 게 이젠 다른 친구의 물건에 손대는 일까지 겹쳐버린 것이다. 처음엔 조용히 타일러 주인에게 돌려주고 덮으려던 게 목격자가 있음에도 딱 잡아떼는 바람에 담임이 몹시 화가 난 모양이다. 더구나 괘씸한 마음에 다그쳐 집에서 되가져오게 한 시계는 어이없게도 마구 짓이겨져 무참히 해체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보통 지적장애 아이들은 돈을 쓸 줄도, 시계를 불 줄도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이어서 일부러 무얼 훔치거나 숨기는 일도 없거니와 거짓말로 둘러말할 정도로 약지 않다. 그런데, 모모는 그렇지 않다는 게 큰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모모에겐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그 미워할 수 없는 뭔가’에 이끌려 관심이 시작됐다. 모모는 아기 때 버려져 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며, 지금의 보육시설에 오기까지 여러 시설을 옮겨 다녔다. 학교도 원래 우리 학교에 다녔는데 일반학교 특수학급으로 전학했다가 부적응으로 다시 돌아온 아이다.

작년 담임선생님 얘기다. 수업 시간에 ‘이담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제각기 ‘미용사요’, ‘운전기사요’ 혹은 ‘요리사 될래요’. 그도 아니면 엄마, 아빠가 되고 싶다 하는데 모모는 조용히 일어나 ‘저는 나무가 되고 싶어요’ 했다는 것이다. 너무 뜻밖이어서 ‘왜?’란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무는 뿌리가 있어 여기 저기 돌아다니지 않잖아요? 나도 나무처럼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좋겠어요’ 해서 그만 가슴이 먹먹했었단다. 그 한 토막 대사에 모모가 안고 있는 큰 슬픔과 상처가 고스란히 함축돼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시렸다.





모모와의 대화는 솔직하고 간결해 애초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야말로 경쾌한 오솔길 산책이었다. 하지만 뒷맛은 왠지 모를 푸르스름한 슬픔이 배어들어 마치 코믹한 영화를 보면서 내내 막 웃었는데 막상 영화관을 나설 땐 눈물이 그렁해지는, 그런 것이었다.

“왜 그걸 훔쳤어?” “그냥 갖고 싶었어요.” “너, 네가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게 뭐야?” “게임하는 거요.” “그거 내가 갖고 싶어 몰래 가져가면 넌 어떻겠어?” “…….” “갖고 싶음 용돈으로 사거나 아님 사 달래야지. 몰래 가져가는 건 반칙이야. 너 달리기 할 때 반칙하면 금메달이고 뭐고 무조건 탈락인거 알지? 게다가 넌 학교 대표 선수인데 학생으로서 반칙은 육상부도, 대회 나가는 것도 탈락이야.”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쉬운 언어로 설명하면서, 다급한 마음에 모모의 마음을 가장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카드로 ‘육상 금지’를 내세웠다. 나보다 머리 하나가 넘게 훌쩍 큰 아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순순히 듣는 모습을 보면, 정말 다신 안 그럴 것만 같다. 하지만 가끔씩 마음에 싸한 바람이 지날 적마다 이 약속의 순간을 그만 까맣게 잊어버릴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 후 괜히 모모 교실 언저리를 서성이는 일이 잦아졌고, 오가는 길목에서 마주칠 적마다 “넌 내 친구야. 친구야 요즘은 반칙 같은 거 없는 거지?”하면, “네, 친구선생님. 참, 방과 후 선생님이요, 축구할 때 골 세리머니로 셔츠를 올려 식스팩을 보이는 것도 반칙이래요. 옛날엔 괜찮았는데 지금은 성희롱인가로 퇴장이래요.” “거 봐라. 끝까지 멋지게 이기려면 규칙도 잘 알고, 절대 반칙은 안 되는 거야.”

시설에 연락을 취해 학교 방문을 좀 해 주십사고 부탁드리니, 모모를 맡아 돌보고 계신 분이 오셨다. 한눈에 봐도 모습과 말씨가 고운 그분을 모모는 이모라 불렀다. 일단 이모란 호칭이 원장님이나 지도사님보다 따스한 느낌이 묻어나 정겨웠다.

얘기 중, 전에 있었던 도난에도 모모가 관계있는 걸로 알고 있다는 인성부 선생님 말에, “그 때, 몇 차례를 두 눈 똑바로 마주치고 물었지요. 너도 함께 했느냐고. 분명 아니라고 했어요. 물론 그 아이가 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끝까지 아니라고 했을 땐 누군가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화를 내시며 딱 부러진 말로 방어해 주시는 게 모모의 든든한 울타리 같아 되레 고맙기까지 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의당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데도 워낙이 세태가 변한 탓인지 굉장한 감동으로 다가설 때가 있다.

아침마다 귀에 딱지가 내리도록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을 것과 남의 것에 손대지 말 것’을 말하지만 아이는 결핍으로 허기가 질 적마다 그렇게라도 해서 채우려 한 건 아닌지. 다만, 뭐든 처음일 땐 두렵고 떨리고 무섭지만 그게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지면 죄책감도 사라지고, 습관이 되는 법. 그리 되지 말게 이모의 도움을 청한 것이다.

다른 아이들 용돈은 각자 알아 쓰도록 하는데, 한 방에 먹을 걸 사 모두 나눠주며 다 써버리는 통에 모모만은 이모가 용돈 관리를 하고 있었다. 시계도 사달란 걸 딱히 필요치 않다 싶어 넘겼는데, 이번 기회에 두 개를 사서 변상도 하고 모모가 시계를 볼 수 있도록 가르쳐보겠다 하신다. 참 고마웠다. 어찌 보면 부모 손길 한번 닿지 않고 주변의 작은 도움 속에 저 혼자 이만치나마 자란 것만도 참 대견한 일이다. 이제 담임과 선생님들, 무료봉사 치과선생님, 방과 후 선생님, 시설 원장님과 이모 등 우리 모두가 조금씩 나눈 모모의 역할부모이다. 나는 생의 참 많은 부분을 가르치면서 배운다. 이모 역시 오히려 자신의 힐링캠프 같았다며 돌아갔다.

모모의 체육활동을 맡은 스포츠 강사선생님은 모모가 육상에 신체적 조건도 좋은데다 정말 탁월한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기초체력부터 잘 다졌다면 참 좋은 재목이었겠단다. 가끔씩 트랙을 돌고 있는 모모를 먼발치서 바라볼라치면, ‘저 아이가 좋은 가정 부모 슬하에서 지지를 받으며 제 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잠시 머물곤 한다.

승부에 대한 근성도 꾸준히 하려는 의지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이들의 훈련은 어렵기 짝이 없지만, 8월 말 인천서 열린 전국장애학생 체육대회에 예선을 거쳐 재훈이와 함께 전북대표선수로 출전했다. 내심 ‘대회를 통해 정정당당히 많은 선수들과 겨루며 경험도 쌓고,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존감도 생기면서 자연 그릇된 행동도 수정되었으면…’하는 마음이 컸다. 이를테면 작은 일을 큰 일로 덮어버리면서, 단숨에 몇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감이었던 것이다.

첫날은 관전만 하고 둘째 날에 경기를 한 결과 모모는 4위에 머물렀다. 은메달을 따고서 의기양양해진 재훈이에 비해 모모는 다소 풀이 죽어 돌아왔다. 덜렁대면서도 느긋한 재훈과 달리 누구의 지지도 받아보지 못한 모모는 약한 의지에 긴장도가 높아 실력 발휘를 다 하지 못한단다. 첫 대회 출전 결과에 스스로도 불만족스러웠던지 몹시 서운해 하는가 하면, 아웅다웅하던 재훈이 앞에선 사뭇 의기소침해졌다.

다시 훈련에 몰입하여 한 달 뒤인 9월 말 순창에서 열린 전라북도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해 이번에는 100미터와 400미터 달리기에서 재훈과 나란히 은메달을 목에 걸고 환한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이담엔 꼭 금메달일 거라는 다짐도 곁들였다.

모모가 어떤 절실함으로 뛰고 있는지, 이 시작이 다음에 모모를 어디까지 어찌 이끌고 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모모의 마음에 빛을 던져 뭔가 싹트게 하는 기회나 계기가 돼줬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열띤 응원을 보낼 뿐이다.

아직은 여린 잎과 줄기로 나부끼고 흔들리며 조심스런 시작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어떤 모양새와 향기를 지니고서 거듭날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바라건대, 지금의 이 출발선이 모모 안에 잠자고 있는 거인을 일깨워 탄탄한 거목으로 곧게 설 수 있게 하기를…. 그리하여 흔들리며 피어난 다른 수많은 꽃과 어우러져 왕자 같이 놀라운 숲을 이룰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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