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몸짓 하나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연기파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요.”
13일 서울 선화예고에서 만난 정해리(1학년) 양은 ‘우아하다’는 말이 잘 어울렸다. 토슈즈를 신은 발걸음은 사뿐했고 곧게 뻗은 다리, 팔의 선과 자태가 고왔다.
롤 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 양은 “누구처럼 되고 싶다기보다 나만의 색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테크닉도 좋지만 ‘연기’를 잘하는 흡입력 강한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는 무대를 즐기고 좋아하는 편이라 연습 때보다 시험이나 무대에서 실력 발휘가 더 잘 되는 편이라고 했다. 지난해 전국무용경연대회 최우수상 외에도 2012년 한국청소년 발레콩쿠르 금상, 서울그랑프리발레콩쿠르 동상 수상은 물론 2012년에는 ‘호두까기 인형’ 주인공 ‘클라라’ 아역으로 발탁돼 유니버셜아트센터 무대에 서기도 했다.
4살 때 우연히 발레를 접한 후 그 모습이 예쁘고 재밌어 보여 어머니를 졸라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어려운 기술을 쉽게 표현해내고 센스도 있다는 선생님들의 칭찬에 힘입어 전공으로 삼게 됐고 4학년 때는 영재 발레 오디션에 합격해 복지관 지원도 받았다.
조은주 선화예고 전공 발레 담임은 “신체조건면에서 타고난 유연성과 아름다운 다리라인을 가지고 있다”며 “또래 친구들에 비해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레슨에 임하는데다 집중력도 좋아 목표한 바를 이뤄내는 학생”이라고 말했다. 발레와 부전공인 한국무용까지 하루 8시간이 넘는 고된 연습과 학업의 연속인데도 결석 한 번 없이 꾸준히 실력을 키우며 유망주로 성장 중이라는 것이 주변 전언이다.
그러나 어머니 혼자 힘으로 비싼 개인레슨비와 대회 참가비 등을 뒷바라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어머니 김봉련 씨는 “교육비 감당이 어려워 포기도 생각했는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지원을 받아 꿈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됐다”며 “전문 레슨과 체계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하면서 선화예중에도 편입했고 선화예고에도 진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3년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이리더’에 선정돼 토슈즈 등 발레용품과 레슨비 등을 지원받는 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정 양은 “편입 직후에는 적응하느라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두 극복하고 연습에만 매진하고 있다”며 “고된 연습으로 발목 재활치료를 받거나 발톱이 빠지는 것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이 겪었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참고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밀가루 음식을 정말 좋아하는데 체중 관리 때문에 참는 게 힘들긴 하다”며 수줍게 웃는 모습은 여느 여고생과 다르지 않게 풋풋했다.
그는 향후 유니버셜 발레단의 창작발레 ‘심청’이나 주인공의 연기력이 중요한 ‘오네긴’의 타티아나 역을 꼭 한 번 맡아 관객을 압도하고 싶다고 했다. 세심한 움직임과 감정표현이 필요하기 때문에 평소 빠른 음악, 느린 음악 등 다양한 반주에 맞춰 개성 있는 표정과 몸짓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유명한 무용수가 되면 갚을 것이 정말 많아요. 우선은 아무 말 없이 뒷바라지해주신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릴 거예요. 또, 몸에 한계가 오기 전까지는 최대한 무대에 서고 싶고… 나중에는 저처럼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무료 레슨을 해주면서 받았던 은혜를 되돌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