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다면 평가제(敎師多面平價制)'란 교사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그 동안은 교장, 교감이 평가하던 것을 교장, 교감, 학부모, 학생, 동료교사가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하며 또한 교사와 학부모가 교장, 교감을 평가하여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목적과 취지는 좋다. 하지만 목적과 취지가 아무리 좋다 해도 수단과 방법에 약간의 문제라도 있을 때는 신중을 기하고 또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교육을 '국가백년지대계'라고 중요시하고, 교사를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라 하여 그 책무성을 강조하며, 청소년을 이 나라의 미래라 하지 않았던가?
세계사적 흐름이 아무리 급하다 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서 쓸 수는 없는 법! 우리는 그 동안 교육개혁이라는 미명하에 교육현장을 우왕좌왕하게 하며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는가?
경제논리에 밀려 일순간에 수 많은 중견 내지 고참교사들이 자의던 타의던 본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떠밀리다시피 교직을 떠나야 했다. 그 후폭풍의 심각성을 일반 사회인들은 느끼지 못할지 몰라도 현장을 지키며 바라보는 교원들은 대부분 알 것이다.
학교는 능률만을 우선하는 획일화된 제품 생산 공장이 아니다. 단순히 기능만 우수하다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며, 사람을 키우는 교육만큼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경륜과 Know-how가 그 어느 부문보다 중요시된다는 것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컴퓨터 좀 잘 다룬다고, 최신 교육학 이론으로 무장만 되었다고, 교육의 전반적인 분야가 효율적이고 수월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논리에서 경제적 효용성 이론에만 부합시키려는 것은 현장을 지키는 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때 한 마디로 넌센스이다.
비록 시간이 흘러 지금은 많이 완화가 되었지만 IMF사태 직후에 몰아닥친 정년 단축으로 인하여 학교현장에는 허리가 없이 머리와 팔다리만 있는 기형적 조직구조로 신음하기도 했다. 교육부문에서 겪어 온 그 동안의 시행착오와 부작용의 예를 들자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우리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다.
'수월성 교육, 수요자 중심의 교육' 참으로 좋은 말이고 취지는 좋으나 그 맥락에서 나오는 것들 중에 대표적인 하나가 교사 다면평가제인데,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학부모가 교사를 평가하고, 수요자인 학생이 교사를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시기상조이며 비합리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유사 이래 '정(精)의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로 서방국가에 비하여 합리적 사고가 약간은 부족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토착화되어 있는 서방 선진국에서 다면평가를 실시한다고, 우리의 풍토와 정서를 고려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도입하여 실시해보자는 식의 논리는 무척이나 경솔한 조치이며 논리의 비약이다.
동료교사가 평가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학부모가 학교에 상주(常住)하는 것도 아니고, 피상적인 잣대로 교사를 평가할 때 과연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 질 것이며, 대학은 그렇다하더라도 아직 가치관과 판단력이 완전히 정립되지 못한 코흘리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자신들을 가르치는 스승을 평가하라는 것은 한편의 코미디 같은 발상은 아닐까?
그러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오늘날 공교육이 붕괴되었느니, 답안지 대필이니, 교실에서 아이들을 교사가 방임하다시피 하는 장면들과 극히 일부의 부적격 교사들의 행태를 부각시켜 교직사회의 위상을 뿌리째 흔드는 현시점에서 그 모든 책임이 과연 교사들에게만 있는 것일까? 그들 또한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비롯된 희생의 산물은 아닐까?
이 사회의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묻고 싶다. 왜 이런 사태가 야기되어야만 하는지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깊이 고뇌하고 그 근원적 원인을 찾아 대안을 찾으려 노력은 해보았는가? 이런 사태는 이 사회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병리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수직적 명령하달체계와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관료주의적 시스템부터 타파되고 그 풍토의 자양분 속에 교육정책이 바뀌어 고질적인 입시 제도부터 자연스레 바뀌어진 다음에 현장의 변화를 추구해야하지 기본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학부모가, 학생이 교사를 평가하라는 것은 결과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이 아닌가?
결론부터 말을 하자면 교사들은 어쩔 수없이 살아남기 위해 학부모와 학생의 구미(口味)에 맞는 교육형태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사가 무슨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도 아닐진대 학부모가 원하는 대로 지식위주, 입시위주, 성적지상주의로 흘러가야 하고 학생들에게는 사랑의 매 한 대, 질타의 말 한 마디도 못하면서 인성교육을 포기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대해줘야 인기(?)가 높아져 유능한 교사로 평가를 받게 된다면 아예 인성교육이며 전인교육은 물 건너가는 결과가 올 것은 뻔한 결과가 아닌가? 미래 한국사회가 바라는 인간상이 도덕성은 결여되어도 능력만 유능한 인간을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 않겠는가?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분들은 책상에만 앉아서 이상적인 정책만 수립하지 말고 현장을 발로 뛰면서 현장의 위기를 확인해 보고 절규에 가까운 현장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 다른 부문보다는 특성이 유난히도 다르고 미래의 국가흥망성쇠를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문에서만큼은 신중을 기하여 최선책을 찾은 다음에 입안 해주기 바란다.
특히 교육부문은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이 있을 수 없으며 후일에 차선책이 가져오는 시행착오의 상흔을 치료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을 직시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현명함을 보여 주기 바란다.
또한 교육의 장을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교사집단이 개혁 및 정리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개혁의 주체임을 직시하기 바란다. 가르침의 주체인 교사가 흔들리고, 신분의 위기 속에 안정감을 찾지 못할 때 교육 전체가 흔들려가고 그 피해의 직격탄을 맞는 것은 죄없는 학생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