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는 건국 이후 작은 차이를 감안할 경우 20번이 넘게 바뀌었다고 한다. 더구나 대입 제도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광복 후 15번이나 바뀌었으니 그 수명이 줄잡아 4년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더불어 5년 마다 뒤바뀌는 정권이 교육과 입시에 개입하는 정도는 지나친 수준이었다.
역대 정부는 조금만 문제점이 드러나도 수술대에 올려 장관을 갈아 치우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지없이 교육정책은 제일 먼저 난도질을 당했다. 이 와중에 휘둘려 고생한 건 물론 수험생과 학부모들이다. 숱한 제도의 실험 대상이었던 그들은 제도가 바뀔 때마다 적응하느라 고생했고, 유. 불리가 엇갈려 웃고 울어야 했다.
69학번, 예비고사라는 제도가 도입되어 그 시험에 떨어지면 대학 길이 막힌다는 생각에 긴장하고 학원으로 몰리고 재수, 삼수생을 양산했다. 81학번, 대학시험 몇 개월 앞두고 갑자기 폐지돼 본고사 준비에 매달린 학생들이 황당함을 당했으며, 86학번은 논술이 도입되어 학력고사가 끝난 뒤 학교에서 하루에 5, 6편씩 논술을 써야했다. 88학번, 선지원․후시험 제도로 자기의 성적을 모르는 상태에서 대학을 지원하는 기상천외 현상에 하향 안전 지원 소동이 벌어졌다. 94학번, 수능을 두 번 시행, 어렵게 출제된 2차 수능을 노렸던 사람이 망쳤으며, 20여 년 전 기출 문제로 본고사를 공부하는 기현상을 낳았고 제일 불쌍한 건 삼수한 94학번, 재수 때 책 바뀌고 삼수 때 제도가 바뀌어 그야말로 날벼락을 만났다. 02학번 우리 아들, 공부안하고 특기 한 가지만 있어도 대학갈 수 있다는 교육부장관의 해괴망측한 말에 속아 결국 대학 입학을 망치고 말았다.
대표적으로 이번에 문제가 된 고교 등급제가 실시된 수시 모집 전형이라는 대입 제도 역시, 본고사와 수능을 중심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 모집 전형이 사교육 시장을 확대하고 계층의 고착화를 유도한다고 비판하며 그들이 지지하고 확대를 요구한 제도였다. 그러나 그 제도는 결과적으로 학력이 뛰어나지만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학생보다는 어정쩡한 학력으로 사교육을 풍부하게 받은 학생을 선발시켰다. 실제 세상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세상과 이렇게도 큰 차이를 보여 온 셈이다.
작금, 시행 예고된 2008년도의 대학 입시 제도가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다. 교육부의 의도는 자명하다. 새 입시제도의 골격은 수능 시험의 기능을 축소하여 자격고시화 하고 학교의 내신을 강화, 9등급으로 세분하여 사실상의 대학 입시 당락을 결정케 함으로써 학교교육의 기능을 정상화 시키자는 명분을 지니고 있다. 점수에 의한 대학의 서열화를 완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학생들을 선발함으로써 점수 지상주의화를 방지하고 대학의 서열화를 막는다면 자연스럽게 각 대학의 특성화가 보다 더 촉진되어 결국은 교육환경의 다양성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교육 열풍의 근원에 현재의 수능제도가 있다고 본다. 당초 통합교과적 출제 방식을 통해 창의성을 키우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점수 따기 경쟁만 과열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능 등급화를 통해 학원으로 향하던 학생들의 발길을 학교로 돌릴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전국 각지의 많은 고교 1학년 학생들이 자기들은 교육부의 실험용 대상이 아니라고 규탄하며 인터넷상에서 토론을 벌이거나 심지어는 고교 내신 등급제를 폐지하기 위해서 더 확실한 행동을 보여주려고 결집하여 "내신등급제 결사반대 촛불시위"까지 벌여 당국을 당황하게 했다. 스스로를 ‘저주받은 89년생’이라고 부르는 분노한 고1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것이다. 전쟁과 군사독재의 시절을 경험한 그 어떤 한국의 세대도 자신들의 출생연도 앞에 그런 끔찍한 수식어를 붙인 세대는 없었다.
내신을 강화하고 수능을 등급화 하는 새 대입제도 시행안이 발표되자 벌써 강남에서 강북으로, 인문고에서 실업고로, 도시에서 시골로 전학을 가는 기현상 등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저주받은 89년생’그들이 책을 잠시 덮고 분노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문제는 한국 교육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 자체에 있다고 본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 일년에 4번 치르는 고사 성적이 직접 입시와 연결되는 현실 앞에서 아이들은 고교 입학과 더불어 입시준비에 들어가야만 하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내신의 변별력을 위해 난이도가 높은 문제들이 출제되고, 사교육은 그 어떤 상황보다도 강화되는 현실을 맞게 되었다. 아이들의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부모들이 고사장에 시험 감독관으로 파견되는 웃지 못 할 풍경들이 연출되기에 이르렀으니 이런 부끄러움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것이다.
교육부의 장담대로 수능을 줄이고 대입 전형요소를 다양화해 사교육을 줄인다는 것은 탁상공론이다. 수험생. 학부모. 학교가 스스로의 힘으로 대입 경쟁을 이길 수 있는 다양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전형 방법을 다양화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곧 또 다른 형태의 사교육 양산과 팽창을 부를 것은 불 보듯 뻔하며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은 커지기만 할 것이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에 의해 자극받고 단련되는 사교육은 그 질적인 면에서 공교육을 압도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을 학부모들이 버리지 않을 것이며 어떤 단체나 제도가 관여하더라도 대학은 필연적으로 가장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는 안간힘을 다하는 상태에서 교육부의 생각은 뜬 구름 잡기에 불과하다.
이런 와중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려는 이들의 행렬로 나라가 어수선하다. 병역을 필해야만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있는 법안의 시행을 눈앞에 두고 이중국적을 지닌 이들이 서둘러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려는 그들이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한국의 교육제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찢기듯 아프다. 그들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판하고 삿대질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들이 왜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이 되려고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떠나지 말고 우리와 함께 열심히 일해 새로운 나라를 일굽시다!'라고 그들의 옷자락을 움켜쥘 수는 있을지언정 대안이 없다고 느끼는 그들에게 무턱대고 핏대를 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나 근본적인 해결의 대안을 모색함이 없이 충격요법에 가까운 교육정책의 반복된 변화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