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새벽 경기도 중부전선 최전방 GP 내무반에서 김모(22) 일병이 수류탄 1발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소대장과 사병 7명 등 모두 8명이 사망하고 2명 이 부상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비보를 듣고 참사가 벌어진 곳에 인접한 인근 군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의 부모로써 지금도 그때 놀란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이번의 참사는 궁극적으로 인성 교육은커녕 방종에 가까운 환경 속에서 개인주의에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지만 의지력은 막대기처럼 야윈 아이를 양산하는 우리의 가정과 인성교육은 뒤로한 채 평가를 위한 줄 세우기에 고심하는 우리 학교교육의 문제이자 책임이라고 볼 때 교사로서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동안 군 당국으로부터 사건의 진상에 대하여 평소 선임 병들로부터 욕설 등 언어폭력에 시달렸으며 경계 근무를 마치고 다음 번 근무자를 깨우던 중 언어폭력을 했다는 선임 병의 얼굴을 본 순간 충동적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했다고 발표했다가 다시 번복하여 모든 사고가 사전에 계획된 참사였다고 발표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했다하더라도 엄격했던 우리들의 과거 군 생활에 비추어 볼 때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어쨋든 황당함을 금할 길 없다.
모두들 군대에 관한 문제들이라며 호들갑떠는 언론도 문제거니와 인터넷을 보노라면 자랑스런(?)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피해자나 가해자, 군대할 것 없이 신랄하게 파멸시키며 군 기밀 정보를 유출시키는 쾌거를 올리고 있다. 게다가 군에 대해 부정적이던 일부 몰지각한 네티즌은 가해자를 옹호해 피해 유가족을 두번 울리는가하면, 이에 질세라 언론은 국가기밀과는 관계없이 군과 관련된 모든 것을 들춰내 만천하에 공개하기 시작하고, 군의 모든 것이 문제라고 단정해버린다.
학생이 자살을 한 사건이라도 벌어지면 너나 할 것 없이 교육정책을 난도질하고 대부분의 선량한 아이들까지 집단 따돌림의 주범으로, 학교는 파렴치한 아이들의 온상쯤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교사는 모두 교육을 포기한 직무유기자로 단죄하는 등 싸잡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세웠던 그들 특유의 마녀사냥이 여지없이 시작된 것이다.
필자는 GP는 아니지만 전방에서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군대라는 조직은 이질적인 개인과 개인이 속한 사회라는 점에서 그 특성상 가장 엄격하고 기강이 확고히 잡힌 조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군에 다녀온 사람이며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반면에 요즘 아이들은 끈기가 없고 돌발적이며 컴퓨터와 친구가 되어 혼자 놀기에 익숙하여 공동생활에는 잘 적응 되어 있지 못하다. 따라서 요즘 신세대와 군대 조직 간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사건이 생길 때마다 군대만의 문제로 몰아세울 것인가.
좀더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면 결국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가정교육, 그에 따른 학교교육의 실태에서 그 원인과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남을 짓밟거나 비정상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최고가 되어야 하고, 내 아이가 남에게 기를 죽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진 이른바 왕자병과 공주병으로 양산하고, '친구들과 놀라!'는 말 대신 '방에 앉아서 공부해라!'고 말해야 하는 우리 가정교육의 현실이 문제이다.
나는 가족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식당에는 잘 가지 않는다. 식당은 아예 아이들의 돌아다니면서 떠들고 어지럽히는 놀이터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많은 방해가 되는데도 아무도 꾸짖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나무라기라도 하면 왜 크는 아이의 기를 죽이느냐고 난리를 피워 망신당하기 일쑤다. 다른 아이들에게 기죽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의 위에 올라서는 것이 우리나라 가정교육 제일의 목표다. 학교에서 심한 꾸지람이나 벌을 받기라도 하면 ‘부모한테도 욕 안 먹는데 당신이 뭔데 내 아이의 기를 죽이느냐!’며 교사를 몰아세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라는 것이 제일의 가정교육 목표인 일본 아이들은 우리 식이라면 벌써 기가 죽어 바보 집단이 되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잘못된 사고방식으로 자란 아이들이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 맡겨지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와 단절된 특수집단 군대에 보내진다. 집을 떠나는 순간 그곳이 감옥이고 유배지이니 당연히 그 속에서 왕자들은 그 환경에 적응이 될 리 없다.
그러나 이번 참사의 주범인 김일병은 나름대로 자기 삶을 사는 자존감 강한 조용한 청년이었겠지만 있어서는 안 될 최악의 선택을 해버리고 말았다. 방법은 많이 이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괴롭힌다면 상대방과 대화하거나 따져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상관이나 지휘관과의 상담이나 군대내의 가혹행위에 대한 고발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막말로 정 못 참겠으면 극단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선임병과 사나이로서 맞짱이라도 떴어야 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면 괴롭히는 당사자만 죽였어야지…….
마치 그가 평소 즐기던 컴퓨터 배틀게임처럼 죄 없는 다른 동료들을 향하여 덤덤하게 수류탄을 던지고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후 침착하게 확인 사살하는 등 이유 없는 복수극을 끝내버리고는 유유히 자기 근무지로 돌아가는 태연함을 보였다. 어리석다 못해 섬뜩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컴퓨터 게임의 폭력과 현실의 경계를 분간하지 못해서 생긴 억울한 죽음과 가족의 슬픔을 누가 보상하란 말인가. 그는 다른 부적응 자들과 달리 내적 해결(자살)대신 외적 해결(타살)로 끝을 보려한 그는 유일한 위안이 될 수도 있는 동정마저도 못 받을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그의 인간적인 인내력과 자제력이 아쉬운 대목이다.
군에 가있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우리나라 군대 생활은 많이 달라지고 좋아졌다고는 짐작하나 인간의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욕구들을 채워주기에는 역시 부족한 면이 더 많을 것이다. 특히 지극히 이질적인 집단에서 성격적으로 낙천적이지 못하고, 인간관계가 부족하거나 자기표현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심적 고통은 엄청날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관계가 복잡하고 어렵지만 더더욱 심한 집단이 군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각기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목적과 이해로 만나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는 사실을 말로만 듣다가 군 생활을 하면서 힘든 과정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꿋꿋이 견뎌내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한 단계 성장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 무사히 가정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사회로 나오면서 다시는 군 쪽으로는 소변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함께 남자로 태어나면 군 생활은 꼭 해야 한다는 모순된 가치가 마음에 공존하는 것이다.
부디 이번 일로 인하여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의 공로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끝으로 부상당한 병사들의 쾌유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이번 사건의 원인 규명과 아울러 대책을 깊이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