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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나의 미국체험’ 연재를 마무리하며

그 동안 연재되었던 ‘나의 미국체험’이 마무리되었다. 나의 미국체험은 2004년 12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지냈던 미주리대학 교환교수(The University of Missouri-St. Louis) 동안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개인기록으로 써 놓던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교육신문 인터넷판 리포터란에 등록을 하고 글을 올렸었다. 누가 내게 요구한 것도 아니고, 반드시 써야 할 강제사항도 아니었으므로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올리던 중 한국교육신문에서 연락이 왔다. 글의 내용이 길어서 신문에는 싣기 어렵고 월간잡지 ‘새교육’에 연재하겠다는 편집국장님의 이메일이었다. 대단히 감사한 제안이었으며, 글을 마무리한 지금 그 동안 글관리를 해준 ‘새교육’ 담당자 분들과 읽어주었을 많지 않을(?) 독자분들에게 한편 고맙고 다른 한 편 설익은 표현과 내용을 더 다듬고 숙고하지 못하고 내보냈음에 송구한 마음이다.

나는 국내 대학에서 학부, 석사, 박사를 마쳤다. 그 동안 학술관계차 혹은 개인 여행으로 세계의 여러 나라를 다녀왔지만 1년이란 긴 시간동안 그 안에서 세밀한 생활을 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1년의 외국교육기관에서의 교환교수 생활을 왜 미국에서 그것도 미주리대학에서 하게 되었는가? 미주리대학은 내게 아무런 연고도 없으며 아는 분도 없었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가 관심을 가진 분야의 교수님이 있는가를 살펴보던 중 비슷한 관심을 가진 분을 발견하였다. 이메일을 보냈고 답장이 왔으며 인연이 닿아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화를, 비록 내가 접하는 미국이 그 세계의 일부일지라도 타인의 눈이 아닌 내 몸 전체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세인트루이스 소재 미주리대학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와의 교류 특히 대만, 일본,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세인트루이스에는 보잉항공사 본사가 있으며, 이 지역에서 보잉사의 위치는 대단히 컸고, 그 보잉사의 비행기를 한국정부가 선택해주었으므로 이 지역 한인회도 보잉사의 초청을 받는 등 한국에 대한 생각이 호의적이다.

미국에 가기 전 미국에 대한 나의 생각은 국내의 언론에서 지나치게 편들어 미화하며, 자국보다도 더 많은 소식을 전해주므로 뜨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며, 박사에 이르기까지 공부하는 동안 학문에서조차 일방적으로 그것도 비판의 여지없이 들어왔으므로 미국의 실체보다는 미국을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의 법석에 거부감을 느끼고, 더욱이 원정출산이니 조기유학이니 기러기 가족이니 하는 극도의 미국선호사상에 다소 질려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을 이상의 국가처럼 떠받드는 것에 대한 반발로 촛불 들고 거리로 나오고, 주한 미군과의 갈등으로 극한 대립을 하는 것을 보며 이 나라의 중심이 없음을 서글프게 생각하였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유난히 인연이 많지만 어찌되었든 내 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일 뿐인데 이토록 좋아한다고 혹은 싫어한다고 그 법석을 떨다니 내가 미국 사람이라면 이러한 한국 사람들이 퍽 이상스럽게 보일 것 같았다. 얼마나 우스운가!

어찌되었든 미국은 현재 가장 강력한 국가이다. 한 나라의 사회망은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연이 닿았으므로 나는 그 나라에 가서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는가를 보고 싶었고, 알고 싶었고, 배우고 싶었다. 배울 것은 배우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별것 아닌 것은 별것 아니라고 똑바로 바라보자, 그리고 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혹은 선진국에서 공부를 하고 왔음에도 왜 한국의 사회는 선진국에 다가가지 못하고 중진국에서 맴도는 이유도 내 시각으로 찾아보자 하고 용감하게 길을 떠났다.

항상 식구들이 많아 버글거리는 속에 살아온 내게 아이한명만 달랑 데리고 간 미국은 한국의 공항을 떠나자 바로 무거운 현실이었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내가 담당해야 한다’며 눈에 힘을 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정년보장도 받은 정교수인데 공연히 사서 고생을 한다고 하였나?’ 하고 후회가 밀려왔다. 내 생각이 어디로 흘러가건 몸은 정해진 길을 따라 일본을 거쳐, 미국의 시카고를 거쳐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하였고 고맙게도 마중나온 분이 기다리고 있어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였다. 공항을 거칠 때마다 이 잡듯이 샅샅이 하는 검색은 받는 사람도 지겹고, 검색을 하는 사람도 괴로울 듯 싶었다. 이익이 충돌하는 현실이라지만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있고, 작은 존중이라도 있었다면 극한의 사태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힘있는 사람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수 있는데, 시각만 조금 달리했어도 아니 현실적 이해관계이므로 시각은 달리할 수 없더라도 방법만 조금 달리할 수 있어도 고맙다는 소리들으며 오히려 친구를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국제관계를 모르는 문외한의 발상인줄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첫날부터 내가 느낀 것은 잘 짜여진 사회규율과 엄격한 법집행 그리고 비록 인종차별의 그늘이 있을지라도, 그러한 까닭으로 더욱 더 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를 강조하는 사회분위기, 적극적인 생활, 노력하는 생활, 함께 잘 지내는 생활, 책임지는 생활을 장려하는 각종 제도 및 학교, 시내 곳곳의 글귀들, 잘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 가득담은 도로나 건물 등에 붙인 인재들의 이름들, 곳곳에 놓여진 동상들, 여러 사람들이 합심하여 만들어 놓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깨알같이 적어 기리는 조그마한 회의실, 70세의 생신을 기려 자손들과 지인들이 헌납한 공원의 벤치로 통해본 기부문화와 그 작은 정성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시선들. 학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세금공제, 각종 장학금 혜택들이었다.

특히 내가 부럽게 바라본 것은 ‘make up' 제도이다. 이번 시험을 잘못 치루었어도 선생님에 따라서 과제를 다시 주고 잘해 오면 한 단계 더 올릴 수 있는 기회도 주기도 하고, 방학 중 즉 남들이 노는 시간에 여름학기가 개설된 다른 학교에 가서 몇 과목을 더 이수하고 그 점수가 좋으면 성적에 반영시켜주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에게 두 세 번의 기회를 더 주는 제도였다. 한국은 학생들이 모두 다 너무도 열심이어서 이러한 제도는 수행이 어려울까? 학습의 목적이 무엇인가? 모두 다 100점이 되어도 이 과목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배웠으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평가의 항목이다. 그 사회에 적합한 혹은 그 학교의 목표에 적합한 인간을 형성하기 위해 개발되어져야 할 목표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개발되어야 할 덕목과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적응하고 생활하기 위해 습득해야할 교양과 학과목을 공부하는 것이며, 대학에서는 개개인의 재능과 필요에 맞는 전문분야를 심도깊게 학습하여 개인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함과 더불어 그 분야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여 보다 나은 사회나 인류의 길을 열어가게 하는데 초점이 두어진다. 미국의 어느 대학은 그 목적이 ‘리더가 되는 학생’을 양성하는 것이다. 전공분야의 학과점수 뿐 아니라 봉사활동도 보는데 ‘봉사활동도 얼마나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봉사의 내용과 그 봉사활동을 즐겁게 이끌어갔는가? 즉 즐거운 리더였는가’에 있단다. 이것은 내가 우리 학생을 보면서 절실히 느끼는 바다. 문제집만 달달 외우면 되는 직업을 구하기용, 순위고사용 활동과 크게 관계없는 동아리에 스스로 재미있고 알고싶어서 참여한 학생들, 그 중에서 회장학생은 고생이 막심하다. 이러한 활동은 코앞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우리 분야의 시각을 넓히고, 인간과 사물, 세계를 보는 또 다른 눈을 키워주어 보다 발전된 사회를 이끄는 리더를 만들어 줄 것이다.

미국 사회의 여러 장점과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안에서 매우 불편하였다. 나는 미국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보고 살핀 미국의 장점과 편리함은 내가 사는 사회, 내 발이 놓여진 한국을 그와 같이 아니 그 이상, 즉 미국의 장점을 곁들여 한국의 장점을 배가 시키는 데 참조할 사항이다. 나는 한국의 미인이 세계의 미인의 기준이 되었으면 좋겠으며, 한국어가 세계의 중심어가 되었으며 좋겠다. 한국의 기준이 세계의 기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하기 위해 세계 최강인 미국의 장점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놓여진 장점들을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장점에 접합시키고 단점을 과감히 정리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진정하고 공정한 실력이 아니라 크고 좋은 것에 무임승차하여 이익을 구하며, 선진국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후한 대접을 받는 사회라면 언제나 남의 뒤만 따를 뿐 미국처럼 남들이 우러러보는 나라는 될 수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미국의 오늘은 그들 특히 그 리더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좋다고 혹은 싫다고 아우성치는 짝사랑은 전혀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해롭기조차 하다.

미국에서의 1년은 내게 아주 귀중한 체험이었다. 미국이 세계의 최강이라고 하기에 더욱 그렇다. 볼 것도 많았고, 배울 것도 많았고, 또 우리가 더 나은 것, 발전할 수 있는 것도 많다는 것을 발견하는 소득이 있었으며, 서러움도 있었다. 조그마한 아시아계로 주눅들고 서러웠던 순간, 디즈니랜드에 가서 손님으로 당연한 서비스를 받아야 함에도 다른 손님과는 함께 사진을 찍던 미키마우스 가면이 내 앞에서 싹 뒤로 들어 가버려 기다린 것이 무안해진 일, 물건을 사는 손님임에도 안사주어도 좋다는 투의 눈길과 손길, 내 쪽에서 무시해도 좋을 사람들이 오히려 막무가내로 무시를 하는 상황은 그들이 그러하였건 아니건 간에 내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무참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하고 작은 나쁜 기억보다는 소중한 미국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기쁨이 더 크다. 지금도 나는 컴퓨터 전문가인 Mary Ann의 진심어린 도움과 친절, Dr. Cochran 교수를 비롯한 미주리대학 교수님들과 학교관계자들의 친절에 크게 감사한다.

2005년 12월 말에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지금 버글거리는 식구들 속에서 나는 편안하다. 비록 주변에 해야할 일들이 넘쳐 몸은 고달파도 오히려 그 움직임이 운동이 되어 뼈를 튼튼히 유지시키고, 정신을 맑게 한다. 아침이면 일찍 학교에 가는 아이의 식사준비, 조금 후에 나가는 신랑의 출근 준비, 나도 배고프다며 깡깡거리는 강아지의 아침주기, 그리고 나의 출근준비, 집안의 대소사 등 일들이 끝이 없어도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하루에 몇 번이고 차없이도 자박자박 걸어서 동네수퍼에 가서 가루비누도 사오고, 방울토마토도 사오고, 지나가다가 튀김도 사먹고, “얘, 우리 나이에는 시간만 나면 걸어야 돼”하며 동네 공원을 걷자고 전화를 걸어주는 동창이 있는 곳, 기분이 상하시면 기차화통 같은 큰 소리로 뻥뻥 야단을 치는 아버지가 계시는 곳, 재깔재깔 까불며 시험문제 내용을 하나라도 더 알아내려 교수의 눈치를 살피는 내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 나는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절절히 느낀다. 더불어 고향을 떠나 낯선 타국에서 지난한 고생을 했을 사람들과 아이만 달랑 데리고 혼자 1년을 지낸 경험에 비추어 혼자 사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어려움을 생각해 본다.

그동안 변변치 않은 글을 실어주고, 읽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새교육’이 보다 더 발전하여 한국 교육의 中興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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