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아침은 손이 열이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쁘기만 하다. 며칠째 아파 누워 있는 아내 때문에 아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웬만해서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던 아내가 이번에는 거동을 못할 정도로 아픈 걸 보면 장난이 아닌 듯했다.
아내가 아파 누워 있는 이래로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예전과 다른 느낌을 받는다. 우선 현관문을 열면 지금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해주려는 듯 신발들이 여기 저기 무질서하게 내팽개쳐 있으며 하물며 싱크대 안에 수북하게 쌓인 그릇들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이 착잡하기까지 하다.
문득 아내의 지나친 깔끔한 성격 때문에 다투었던 지난 일이 떠올려진다. 맞벌이를 하지 않는 사람이 집안 청소라도 깨끗이 해야 한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쓸고 닦기를 반복하였다. 하물며 아내는 손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청소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내에게 대충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아내가 아픈 이후, 집안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욕실에는 아이들이 매일 벗어 놓는 옷들이 쌓여져 갔고, 가구마다 입으로 훅 불면 날아갈 정도로 뿌연 먼지가 내려 앉아 가고 있었다. 늘 나와 아이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아내의 내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아내의 빈자리가 이렇게까지 크게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자신의 몸이 불편하면 만사가 귀찮아질 만도 한데 아내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파 누워 있으면서도 아이들과 집안 걱정은 여전하였다.
지난밤이었다. 아내의 병간호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밖에서 '쨍그랑'하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시계를 보니 열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문을 조금 열고 거실 동정을 살폈다.
밖으로 나가보니 막내 녀석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깨어진 접시를 주워 담고 있는 것이었다. 바닥과 싱크대 주위에는 거품과 물이 튀겨 말 그대로 온통 난장판이었다. 막내 녀석은 나를 보자 멋쩍은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니? 다치지는 않았니?"
막내 녀석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빠, 죄송해요. 갑자기 접시가 미끄러져서…."
막내 녀석은 내가 한마디의 꾸중이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울 듯,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사실은∼요. 엄마가 많이 아픈 것 같아 설거지라도 하려고 그랬는데…, 그만…."
막내 녀석의 말을 듣고 난 뒤, 나는 한참동안 녀석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을 녀석은 행동으로 옮긴 것이었다. 녀석과 함께 깨진 접시 조각들을 치우면서 곁눈질로 녀석의 표정을 살폈다.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은 나를 보자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피식하고 웃음을 던졌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앙증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그놈을 와락 안아 주었다. 얼떨결에 당한 나의 포옹에 녀석은 영문도 모르는 채,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덩치 큰 놈을 힘을 다해 안아주며 말을 했다.
"그래, 네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엄마도 곧 나을 거야."
막내 녀석도 엄마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학원에 다녀와서 숙제와 공부로 피곤할 텐데 녀석은 시키지도 않은 설거지를 몰래 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아내의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워주려고 애를 쓰는 막내 녀석의 마음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깨진 접시는 그 무엇으로 붙여도 원래의 상태대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막내 녀석의 작은 행동은 가족의 결속을 다지는데 원동력이 된 것만은 분명했다. 다음 날 지난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자 아내는 힘을 얻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