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난 뒤, 아내의 성화에 ‘바기오’ 재래시장(Public Market)으로 장을 보러갔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 재래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시장에 들어서자 이곳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였다. 그 향이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구역질이 나기도 하였다. 마치 우리나라 70년대의 시장을 연상케 하였다.
이곳 현지인들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이 시장에서 구입한다고 하였다. 특히 시장 자판에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온갖 채소와 과일, 생선 등을 파는 상인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알아듣지도 못하는 ‘따갈로그’를 쓰며 상행위를 하였다.
일부 상인들은 아내와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귀에 익은 한국말을 하며 팔아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이방인으로서 이곳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을 산다는 것이 선뜻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특히 이곳에서 파는 물건들 중에 야채는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다.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대부분의 야채는 무공해로 재배한 것이어서 그냥 먹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깨끗하다고 하였다. 아내와 나는 한국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인 김치를 담그기 위한 배추를 사기 위해 시장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배추를 판매하는 야채 가게들이 시장 여기 저기에 많이 있었다. 이곳의 배추는 우리나라의 배추에 비해 포기가 작고 속이 꽉 차지 않아 김치를 담으려면 여러 포기의 배추가 필요했으나 신선도 하나 만큼은 믿을만했다.
그 다음 문제는 김치에 들어갈 양념을 사는 일이었다. 아내는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를 따라오라며 앞장 서 갔다. 아내와 내가 도착한 곳은 한국산 양념을 파는 가게였다. 그곳에는 우리나라에서 들여 온 채소류(양파, 마늘, 고추, 파 등)를 팔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탓일까? 가게 주인은 한국말도 곧 잘 하였다. 새삼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값이 비싸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던 온갖 과일들(바나나, 망고, 망고스틱, 파인애플, 두리안 등)을 저렴한 가격(예를 들면 바나나 1묶음 25페소: 한화 500원)으로 사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지인 몇 명에게 이곳 ‘바기오’를 방문하고 거주하는 한국사람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한국사람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끔 돈이 많다고 거들먹거리며 자신들을 무시하는 한국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느낀다며 인상을 쓰는 현지인도 있었다.
비록 생김새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년 이곳 ‘바기오’는 골프를 치기 위해 많은 한국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사람들의 잘못된 행동거지 하나 하나가 한국의 위상을 실추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