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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연수원의 추억 (5)

울산교육연수원은 울기공원 안에 있다. 공원 안에 연수원이 있다는 건 연수원이 공원보다 먼저 건물이 세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울기공원은 울산의 공장이 많이 있는 방어진에 위치해 있다. 큰 길에서 아마 1km 정도 걸어가면 된다. 공원입구 오른쪽에 보면 연수원 입구가 보인다. 울산에서 유명한 커다란 고래 턱뼈가 아취 형태로 세워져 있음을 보게 된다.

거기에서 양쪽 소나무 사이로 약 150m쯤 걸어 들어가면 연수원 건물이 나온다.연수원은 때때로 하얀 세상이 된다. 건물 앞으로 펼쳐진 바다가 하얀 세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보통 때는 연수원은 푸른 세상이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나무도 푸르다. 그러니 언제나 푸른 세상 속에서 푸른 꿈을 키우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검은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하늘도 검다. 바다도 검다. 나무도 검다. 그러니 마음도 새까맣게 타들어가게 된다. 그럴 때는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 때는 바람도 거칠다. 소리도 거칠다. 파도소리도 거칠다. 고동소리도 거칠다. 나무소리도 거칠다. 검은 세상을 보는 듯하다. 검은 세상 속에 함께 검게 된 나를 바라본다. 검은 세상 속에 함께 거칠어진 나를 되돌아본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검은 세상이 하얀 세상으로 바뀔 날이 있겠지 하며 기대해 보기도 한다. 그러던 중 4월 첫날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식당은 동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그야말로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다.  누구든지 처음 와 보는 사람들은 입을 짝 벌리게 되어 있다. 그 정도로 좋다. 바다가 주는 압도감에 주눅이 들게 되어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두렵게 되어 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평화를 누리게 되어 있다.

오후 6시가 지나면 그 좋은 곳에 위치한 식당에 식사하러 간다. 어둠이 옅게 깔릴 즈음 바람도 외로운 듯 솔잎을 스쳐 지나간다.  그 때 나는 하얀 세상을 보게 된다. 하늘이 하얗게 물들어 가면 바다는 거품 내며 화답한다. 두 눈 동그랗게 멍하니 바라보면 솜털 사탕이 바다 위로 정신없이 솟아오른다. 하나 둘 세다 말고 너무 많아 두루 눈 돌리게 된다. 바다 속에서 만들어내는 하얀 거품은 점점이 하얀 백색 천국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거구나. 역시 바다가 평상심을 찾으면 하얀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등공신이구나. 바다와 같이 세상 곳곳에서 하얀 거품을 품어내어 하얀 세상으로 만들어내듯이 우리들도 바다처럼 하얀 성품, 하얀 정직, 하얀 마음, 하얀 말의 물감을 갖고  검은 세상을 점점이 구석구석 하얀 세상으로 만들어 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얀 세상을 만들어내는 바다를 보노라면 바다를 가르는 배들도 하얗게 보인다.‘앞서가는 손님 배(船) 어둠을 의식한 듯 흰 물결 출렁이며 힘차게 달려가니 뒤따르는 화물선 친구 잃을까봐 하얀 땀 흘리며 쉼 없이 쫓아가네.’하면서 읊조리기도 한다. 바다가 만들어낸 하얀 세상에서 새들은 춤을 추며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보일 듯 말 듯 작은 새 하얀 자태 드러내며 온 몸을 뒤집고, 지척 거리 큰 새 하이얀 배(腹) 보이며 물장구친다.’하면서 중얼거린다.

바다가 만들어낸 하얀 세상을 축하해주기 위해 식당 앞에 서 있는 두 동백나무는 흰 꽃과 붉은 꽃으로 축하해 준다. 오른쪽 붉은 동백꽃, 왼쪽 흰 동백꽃 쌍을 이루어 앞 다투며 손짓하나 내 눈에 보이는 건 흰 동백꽃뿐이구나. 나도 모르게 이 내 마음 희게 되니 보는 것마다 흰 것이요, 먹는 것마다 흰 것이네. 온 세상 모든 것 하얗게 물들었으니 검디검은 이 몸도 하얗게 변하구나!하고 지껄인다.

저녁식사 후 숙소에서 강당으로 충효의 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데 역시 하얀 밤을 이루었다. 그 기쁨 무엇으로 표현할꼬? 평생 처음 보는 하얀 세상을 평생 담고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카메라에, 비디오에 담지 못해  아쉽기만 하구나. 하얀 세상을 만난 나는, 하얀 마음으로,  하얗게 되려는 심정으로, 하얀 백지 위에, 하얗게 담아 보려무나.
‘짙-게 깔린 어둠 사이/ 야풍(夜風)은 훈훈하고/소나무 사이 고개 내민/둥근 달 미소 짓네.//듬성듬성 별님은/바다 위에 걸려/반짝반짝 손짓하며 웃음 짓고,/소나무 너머 등대 빛/간간이 비추어 주니/바다 물결 반사되어/짙게 물든다.// 솜털 입은 둥근 달님/ 바다 비추니/백월광(白月光) 입은 바다 물결/백파장(白波場)이루고,/동백나무 비추니/흰 동백꽃 신난다.//달님도 별님도/흰 빛 되어 비추고/ 등대 빛도 친구 되어/간간이 비춰주네.// 파도도 흥겨운 듯/ 덩실덩실 춤을 추니/ 둘러선 자욱마다/ 흰 발자취뿐이라.// 발길 돌려 아쉬워/ 뒤돌아보니/달님은 월송 위로/더 높이 올라.//불빛의 백목련화/더욱 뽐내고/어둠 속의 벚꽃도/진가(眞價)날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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