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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연수원의 추억 (8)

99년 3월부터 울산교육연수원에서 근무할 모셨던 원장님은 김석규 원장님이셨다. 원장님께서는 지금 정년퇴직을 하시고 부산에서 살고 계신다. 저가 30년 교직생활을 하는 가운데 많은 선배 선생님을 만난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분이시다. 이분에게서 남은 교직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가르쳐 주신 분이시다.

98년 3월 언양여상에 발령을 받아 가니 원장선생님께서는 언양여상에 교장으로 계시다가 다른 학교로 가셨다. 그 때 처음 원장선생님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학교를 떠났지만 실업계 학교에 인성교육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학생들에게 책을 통해 사람됨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게 하고 공책에 감상문을 쓰게 하고 시를 외우게 하고 사람됨 교육을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 저가 간 뒤에도 반별 감상문 발표대회를 가져 시상을 하기도 했었다. 교장선생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만나 뵙고 싶었고 함께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그 다음해 저가 울산광역시교육청에 인턴장학사로 근무할 때 원장님께서는 중등교육과 장학관으로 오셨다. 같은 과는 아니었지만 자주 뵙고 인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 다음해 그분을 직접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울산연수원에 원장으로 오셨고 저는 교육연구사로 가게 되었다.

그 때 원장님의 말로만 듣던 지성과 감성, 인성의 탁월함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되었고 남은 교직생활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그래서 그분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애를 많이 썼다. 원장님께서는 부산사범학교를 나오시고 검정고시로 중등 미술교사, 국어교사의 자격증을 획득해 초,중등을 두루 거친 분이시다.

하루는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가운데 원어민교사와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시느냐고 물으니 ○○일보에 나오는 영어회화부분을 매일 공부해 이렇게 되었다고 하셨다. 두뇌는 명석하고 판단력이 예리하며 특히 기억력이 뛰어나셨다. 교육감님께서 연수원에 강의를 하러 오실 때 소개를 하는데 아주 소상하게 조금도 막힘없이 머릿속에 입력된 대로 하시는 걸 보고 놀라기도 했다.

원장선생님께서는 젊었을 때부터 시인으로 등단하셔서 시작(詩作)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감성이 풍부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원장님께서는 삶이 바로 시였다. 생각이 바로 시였고, 교육철학이 바로 시였으며, 행동이 바로 시였음을 알 수 있다. 깔끔한 성격이 깔끔한 시어로 나타났고, 아름다운 성품이 아름다운 시로 나타났다. 저는 최근에 어느 누구의 시보다 원장님의 시집을 읽고 가슴에 와 닿게 된다. 삶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리라.

원장선생님께서는 너무나 검소하시다. 그 때 당시 낡고 폐차시키기가 늦은 프라이드를 타고 계셨다. 낭비를 좋아하지 않으셨고 ‘적빈을 위하여’라는 시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가난을 자랑으로 여기셨다. 바다를 베개 삼고 가난을 친구 삼아 살아오신 분이시다. 지금도 조그만 아파트에 살고 계신다. 차도 타고 다니시지 않는다.

하루는 함께 연구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경남 시절 장학사로 있을 때 진주에서 살고 있었는데 인사철이 되어 선생님 중에는 새벽부터 집에 찾아와 문을 열어달라고 기다리고 있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고 돌려보냈다고 하셨다. 원장선생님의 청렴결백함은 이미 소문이 나있는 그대로였다.정말 대단하신 분이셨다.

원장실에 결재를 가면 언제나 밝은 미소로 맞이한다. 편안하게 해줄 뿐 아니라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는 ‘책무성’과 ‘자율성’을 강조하신다. 언제나 담당자를 믿어주셨다. 무슨 일을 해도 그 일을 맡은 자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 가장 잘 안다. 소신껏 일을 해라.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하셨다. 책무성과 자율성! 그래 맞다. 스스로 부담 없이 아무런 간섭 없이 자유롭게 일하게 해주고 인정해주고 믿어주고 자기 일에 대한 자기의 책임을 강조하는 원장선생님을 오늘도 그려본다. 저도 앞으로 관리자가 되면 그러해야겠다는 생각도 가지게 한다.

그 뒤에 다시 울산광역시교육청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저가 먼저 장학사로 가 있을 때 원장선생님께서는 학무국장으로 오시게 되었다. 이렇게 원장님의 만남으로 인해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었다. 감성, 지성, 인성, 사람됨, 업무처리능력, 인화단결...등을 닮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부산에서 시작(詩作)활동을 하면서 여생을 행복하게 살고 계시리란 생각이 든다. 안부전화도 자주 드리지도 못하고 자주 만나 뵙지는 못해 죄송할 따름이다. 평생을 잊지 않고 그 아름다운 모습 그리면서 남은 교직생활에 힘써 보려고 한다.

99년 4월 12일 오후 3시 제8기 입소식이 강당에서 있었다. 밖에는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고 파도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들려오고 있었다. 구름은 바다의 반을 덮고 있는 가운데 김석규 원장님의 격려사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을 메모한 것이 있어 소개한다.

“경영정보고 1학년 여수련생 260명 여러분의 입소를 환영합니다. 낙락장송 우거진 숲과 태평양 천해의 수려한 곳, 그리고 건너다보이는 대왕암은 호국충정이 서려있고 유서 어린 곳입니다. 우리 연수원은 이와 같이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2박3일 동안 자아성찰과 미래의 풍부한 이상과 꿈을 갖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경영정보고는 새 밀레니엄시대, 21세기 세계화, 지식․정보사회화 시대가 요구하는 일꾼을 양성하는 학교로, 여러분들은 경영정보, 지식, 실무, 기능을 연마할 수 있는 좋은 학교를 선택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학교에서 경쟁력 있는 유능한 학생으로, 믿음직스럽게, 든든하게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중에 세계적인 실업가, 경영가 등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여러분들은 2박3일 동안 자아성찰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가정에서 어떤 딸이며, 어떤 자리에 있는가? 그리고 학교에서의 위치는 어떠한지, 스승과 제자사이, 급우간에 어떤 위치에 있는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실현할 것이며, 장차 국가 사회에 어떻게 이바지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방황하거나 몽상에 빠지거나 옆길로 빠져서는 안 되며, 21세기의 주역으로서 조그만한 일에 좌절해서도 아니 됩니다. 술, 담배, 싸움 등 온갖 부정적인 것에서 탈피해야 하겠습니다. 독일의 어떤 철학자는 “국가의 장래를 보려면 청소년을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올바른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학교는 새학교문화창조에 앞서는 학교입니다. 앞을 내다보고 생동감 넘치는 학교로 정착시키고 있는 이상근(李尙根)교장선생님을 나는 존경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쌓아놓은 연극, 별천문화제, 권투, 레슬링, 각종 교내 행사 등 본받을 만한 것이 많습니다.

학반의 이름도 동양인 전통 윤리 덕목인 인의예지신진선미....으로 특색 있게 이름을 쓰고 있는 걸로 압니다. 여성으로서의 덕목은 그 중에 진선미라고 생각됩니다. 진은 ‘진실’, 선은‘착함’, 미는‘아름다움’ 그리고 정은 ‘정절’, 숙은 ‘맑음’, 현은 ‘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덕목을 갖춘 여성이 다 되어 줄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지금은 사월입니다. 사월은 영어로 April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신화 아프로디테에서 온 말입니다. ‘미의 여신’처럼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길러야 하겠습니다.

연수원 안에서 생활이 어려울 줄 압니다. 여기에는 경력과 경륜이 높은 연구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분들께서 여러분들을 따뜻하게 보살필 것입니다. 연구사님들의 지도에 잘 따르고 명령, 지시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단체생활에 규칙, 절도 있는 생활하시기 바라며, 모범적인 학교가 되어줄 것을 기대하며 끝으로 건강관리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의 박수소리는 그들의 고동소리와 함께 울러 퍼지고 나에게 유익한 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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