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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아내의 세뱃돈




설날 아침. 고국에 있는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아내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밀가루로 빚은 만두와 여기에서 산 떡으로 떡국을 끓이며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입을 한복을 꺼내놓고 아이들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느새 이곳 생활에 익숙해 졌는지 설날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에서의 설날은 친척집을 방문한다든지 세배를 하고난 뒤, 세뱃돈을 받는다는 기분이라도 있을 텐데 여기에서는 우리 식구만이 설날 기분을 내야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먼저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며 새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일어나 세배를 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런데 막내 녀석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하품을 하며 내게 물었다.

“아빠, 오늘 무슨 날이에요? 갑자기 세배를?”

막내 녀석의 질문에 옆에 있던 누나가 비아냥거리며 대답했다.

“바보야, 설날이잖아. 그러니 빨리 일어나 세배를 해야지.”

그제야 막내 녀석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온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막내 녀석은 고국에서의 생활을 잊고 있는 듯 했다.

우선 제사를 지내기 전에 아내와 나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로부터 세배를 받았다. 그리고 절값으로 필리핀 페소가 아닌 최근 한국에서 새로 발행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넣은 지갑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세뱃돈으로 한국 지폐를 받은 아이들은 다소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서로의 얼굴만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이곳 필리핀에서는 한국 지폐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그랬다. 아내는 아이들이 한국 지폐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한국인으로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돈의 소중함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필리핀 1페소의 가치가 한화 20원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은 돈을 헤프게 쓸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설날 며칠 전에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기위해 한국에서 온 사람으로부터 간신히 천 원짜리 지폐를 구했다고 하였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지갑에서 꺼낸 천 원짜리 지폐를 손에 들고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리고 필리핀 1,000페소(한화 20,000원에 해당)짜리를 꺼내들고 우리나라 천 원짜리와 비교해 가면서 우리나라 화폐의 우수성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아무튼 이곳 필리핀 ‘바기오’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설날이 다소 아쉬움은 있었으나 아내가 끓인 맛있는 떡국을 먹으며 가족끼리 덕담을 나누는 시간도 가져 의미 있는 명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평생 잊지 못할 세뱃돈을 엄마로부터 받은 것에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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