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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논술이 정말 우리 교육의 희망일까?



 논술 시험은 교육부와 대학 당국의 타협물

현재 고등학교 교육에서 가장 관심의 대상은 논술이다. 2008 대입제도에서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등급제로 시행되고, 주요 대학들이 학생 변별력 강화를 위해 논술 비중을 확대하면서 저마다 논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서울대의 통합논술 시험 발표 이후 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들까지도 열기가 뜨겁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논술 교육이 모든 교육의 핵심처럼 떠들고 있다. 전문가들도 마이크만 들이대면 논술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신문들도 아예 정기적인 논술 특집에 논술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다. 학원가는 학원가대로 논술 교육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단지를 뿌리고 있다. 심지어 동네 조그만 학원도 초등학교 때부터 통합 논술을 해야 한다며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맹신은 사태의 본질을 흐린다. 다시 말해서 논술 교육 집착에는 허점이 보인다. 우선 현재의 논술 시험은 순수하지 않은 면이 있다. 논술 시험은 대학과 교육부의 힘겨루기에서 탄생한 어정쩡한 시험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은 끊임없이 국․영․수 형식의 대학별고사를 보겠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고등학교의 성적을 못 믿겠다는 것과 학교 간 차이가 있으니 대학별 고사로 걸러 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육부는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 등을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그래서 양쪽이 합의한 것이 지금의 논술 고사이다. 논술 고사는 고등학교 교육의 핵심이 아니라, 서로 입장이 다른 기관이 차선책으로 내놓은 타협물의 성격이 짙다.

논술 시험, 대학 입학시험으로 적합하지 않다

논술은 짧은 시간에 보는 시험 제도이다. 더욱 이 시험은 서울 중상위권 대학에서 실시하는 입학시험이다. 2008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45개 대학이 논술고사를 실시하며, 이들 대학의 모집인원은 5만1807명에 이른다. 이 인원은 전체 모집인원의 13.9%이며, 작년 수능 원서 접수자를 기준으로 보면 전체 수험생의 30%가량이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논술 시험은 소수 대학을 위한 소수를 위한 제도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런 소수를 위한 제도가 온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한참 잘못된 현상이다.

또 짧은 시간에 하는 글쓰기는 실력 외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순발력이 뛰어난 학생이 유리하고, 익숙한 논제를 경험한 학생이 의외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 논술 시험은 창의력과 사고력을 측정하는데 한계가 있다. 오히려 오랜 논술 교육이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러한 문제점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오직 논술 교육을 하지 않는 학교 비난에만 앞장서고 있다. 심지어 학교의 논술 교육 능력을 의심하기도 한다. 언론이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의지가 있다면, 현재의 논술 맹신에 대한 반성의 깃발을 세우는데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현실적으로 학교가 왜 논술 시험 준비를 할 수 없는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언론은 무턱대고 학교를 비난하지 말고, 논술 시험 준비 교육은 대학별, 개인별 지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심층 취재를 해야 한다. 학교에서 교사가 기존 교과 시간을 끝내고, 일부 수험생을 위해 논술 시간에 투입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도 언론의 몫이다.

통합논술도 매력적인 이름에 비해 함정이 크다. 과연 무엇을 통합했단 말인가. 교과 내용을 적당히 섞여놓고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했는데, 이는 본질을 흐리게 하는 장치가 된다. 과학교과적 소재에 수학적 원리를 적당히 결합한 문제를 출제하고 ‘수리과학 통합형’ 문항이라고 하는데, 왜 통합하는지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 단순한 지식을 묶어 놓고 통합이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학문적 태도가 아니다. 통합은 적어도 새로운 이념과 가치를 생산해 내야 한다.

논술 시험도 학습 결과에 대한 평가다. 평가란 가르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현실적으로 학교는 독립적인 교과 시간으로 운영되고 평가도 그에 따라 실시한다. 그렇다면 국가 차원에서 통합교육과정을 가르치지 않고 있으면서, 통합 논술 평가를 하는 것은 모순이다. 실제로 대학은 학문의 세계를 아주 미세하게 나누면서 고등학교는 무턱대고 통합해서 가르치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논술 교육으로 사교육 시장 새로운 부흥기 맞아

지금 학원가에는 서로 논술 교육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들은 적당히 배경지식을 제공하고, 글 쓰는 기술을 가르친다. 물론 대학생 아르바이트가 하는 첨삭지도도 빼놓지 않고 있다. 논술은 교과의 성격상 사교육이 달려들기에 제격이다. 우선 학교에서는 개별적인 구미에 맞는 교육이 힘들다. 다른 교과는 그럭저럭 자기주도학습도 가능하지만 논술은 이런 면에서 취약하다. 게다가 관념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해야 하는 생경함이 무턱대고 학원으로 가게 한다.

학원은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지원 희망 대학의 논술 문제를 풀고, 동일한 유형의 문제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책을 읽지 않아도 배경지식 키우기라며 유인물도 대량으로 지원해 준다. 학교는 불가능하지만 학원은 서너 명이 모여서 논술 수업을 하기 때문에 효과도 만점이다. 학교에 없는 논술 전문 강사도 있다. 그러다보니 논술 학원으로 학생들이 몰려가는 것은 당연하다.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리는 현상은 사회 정의 차원에서도 보기 흉하다. 그러다보니 언론은 이런 현상을 막아보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 논술 시험의 관문을 통과한 학생들이 학원에서 배우지 않았다는 경험을 인터뷰하는 기사도 크게 싣는다. 그러나 이것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학원에서 논술 공부를 한 학생들이 논술 시험에서 유리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다 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논술 시험은 단기간에 실시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학원에서 배우면 배울수록 유리하다.

그런데도 대학들은 학원에서 배운 학생들이 논술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못 얻도록 하겠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특히 서울대는 강남이라는 특정 지역을 거론하며, 이 지역 학원가의 논술 내용을 제외하겠다는 언급이다. 당연하다. 지금 초등학교 시험 문제도 동네 학원의 문제와 비슷하면 질타를 당한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되풀이 하는 서울대학교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우리 국민을 우습게 보는 오만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논술 교육, 대학이 맡아야

지금까지 분석해 본 것처럼 논술 시험은 대학 입학시험으로 적합하지 않다. 공교육에서 감당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구조적으로 논술 시험은 학원에서 학습하면 효과도 크다. 우리나라와 같이 상급 학교 진학 열망이 높은 환경에서는 논술에 대한 사교육 시장은 앞으로도 불길처럼 타오를 것이 뻔하다.

우리는 교육에서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논술 시험이 최선이라고 맹신하는데 이 또한 경계해야 한다. 물론 글을 읽고 개인의 사고를 통해서 논술을 쓰는 행위는 어느 정도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꼭 그것만이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를 키우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논술이 아니더라도 현재 모든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사고력, 창의력을 충분히 학습시키고 있다. 만약 이것을 부정한다면 현재 교육과정을 폐기해야 한다는 논리가 선다.

여러 면에서 논술은 우리 교육의 희망이 아니다. 교육계의 걸림돌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루 빨리 논술 시험을 없애는 일이다. 논술은 교육부와 대학이 힘겨루기를 하다가 사생아처럼 만들어진 시험이다. 대학이 우수 학생 선발에 대한 욕심을 전환한다면 논술 시험에 대한 집착에서 저절로 벗어날 수 있다.

서울의 몇몇 중상위권대학은 아직도 학업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아예 몇몇 대학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면서 입시 설명회까지 열고 있다. 대학은 수능 점수 몇 점 높은 학생을 뽑는 것보다 우수 학생을 기르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교육을 성실히 이수한 학생들 뽑아서 시대에 맞는 인재로 키우는 것이 오늘날 대학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논술 교육은 대학에서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논술 전문가인 교수들과 대학의 제반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교육도 용이하고 효과도 크다. 고등학교에서 하는 대입 논술 준비는 대학 입학 후 대학 학습과 연계되는 면도 없어 교육적인 면에서도 효과가 없다. 오히려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논술 준비는 그것이 목적이 되어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등 교육적 효과도 왜곡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교양과목부터 전공과목까지 논술 강좌를 개설하여 체계적으로 교육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교육적이다.

우리 대학은 그동안 양적 팽창을 거듭하면서 몸집은 키울 만큼 키웠다. 이제는 내면을 키울 때다. 이 내면을 키우는 적기가 지금이다. 얄팍한 입시 성적에 얽매이는 정책에서 벗어나 학생들을 키우는 교육에 집념을 보여야 한다. 대학이 논술 교육을 떠맡겠다고 나서는 것도 스스로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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