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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태백산과 오십천이 만나는 죽서루에 올라

- 동해안의 관동별곡(4)

“진주관 죽서루 아래 오십천에 흐르는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 가니,
차라리 그 그림자를 한강의 남산에 대고 싶구나.
관원의 여행길은 유한하고 풍경은 내내 싫지 않구나.
그윽한 회포도 많고 나그네 시름도 둘 곳이 없다.
신선의 뗏목을 띄워 내여 북두칠성 견우성으로 향할까?
사선을 찾으려 단혈이라는 동굴에 머물러볼까?”

 송강은 삼척에 있는 죽서루의 절경을 보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관원으로서의 의무만 없다면 그윽한 회포와 나그네 시름을 죽서루에서 실컷 풀고 싶다고 했다. 또한 신선의 뗏목을 오십천에 띄워서 북두칠성 견우성으로 가고 싶다며 칭얼거렸다. 이렇듯 ‘죽서루’는 송강의 맘을 단번에 사로잡았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죽서루는 조선 초기의 누각으로써 세워진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추정할 뿐이다. 현재의 누각은 태종 때의 삼척부사 김효손이 고쳐지었다고 한다. 

 


 예전 전통 건축 공법 중에 그랭이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자연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기 위한 기술적 방법을 말함인데, 죽서루에는 이런 그랭이법이 아홉 군데 정도 적용되었다. 즉, 아홉 군데의 자연초석 위에 누각의 기둥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죽서루의 1층 기둥은 높이가 제각기 다르다. 인공초석과 자연초석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서루’라는 이름의 유래가 무척 재미있다. 예전에 죽서루 동쪽에 대나무 밭이 있었으며 그 대밭 속에 죽장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죽장사 서편에 있는 누각이라 하여 죽서루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유래는 ‘죽죽선녀’라는 기생과 관계있다. 죽죽선녀는 고려 시대 때 수많은 시인 묵객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아름답고 청순한 미녀였던 것 같다. 전설에 의하면 죽죽선녀는 죽서루 근처에 유희소를 하나 만들어 자신을 찾아오는 지식인들과 교유했다. 시로써 그들을 희롱했으며, 선녀처럼 아름다운 자태로 그들을 유혹했다. 이 죽죽선녀의 유희소 서쪽에 있는 오십천 절벽 위에 누대가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죽서루였다는 것이다. 

   


  죽서루 동쪽 연근당 자리에는 구멍이 뚫린 ‘용문바위’라는 것이 있다. 신라 문무왕이 용이 되어 동해를 순행하다가, 오십천까지 거슬러 와서 강변의 절벽을 아름답게 조각한 후 이 바위를 뚫고 승천했다는 것이다. 또한 바위 위에는 선사 시대 암각화로 추정되는 여성 생식기 모양의 구멍 10개가 있다. 이 구멍에 좁쌀을 넣은 후 그 좁쌀을 가져가면 아들을 낳는대나 어쩐대나.

  죽서루 오른쪽에는 송강을 기리는 시비가 팔각형의 기둥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송강 가사의 터’라고 불리는 이 시비에는 송강의 생애와 작품 활동, 그리고 죽서루를 노래한 관동별곡 원문들이 음각되어 있다. 

  


  관동별곡에는 수많은 정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정자들은 대개 바닷가 근처의 기암절벽 위에 세워져 있으며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죽서루는 규모면에서 정자를 압도하는 누각이며 강변 위의 기암괴석에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앞에 흐르는 오십천과 구비 구비 서린 태백산맥의 줄기, 배흘림기둥 사이로 불어오는 경쾌한 바람의 향은 다른 정자에서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십천과 죽서루는 수 백 년을 서로 그리워하며 태백산맥 밑자락을 지켰다. 죽서루는 오십천의 옥색 물빛에 담겨 있고, 오십천은 죽서루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에 몸을 일렁거린다. 마룻바닥에 앉아서 맑은 바람에 몸을 맡기니 서늘한 기운이 정수리까지 순식간에 올라온다. 그 서늘함에 취해 아까 보았던 송강 시비의 시 구절 하나를 조용히 읊조려 본다.

“사람은 아니 뵈고 산봉우리만 강상에 있어
바닷구름 다 지나가도 달빛만이 곱게 비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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