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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오월에 내리는 백설을 볼 수 있는 곳, 울진 망양정

- 동해안의 관동별곡(5)

왕이 피서를 갔다는 강이라고 해서 왕피천인가 왕이 피난을 갔다고 해서 왕피천인가. 울진군 근남면 신포리에 가면 이 왕피천이 모래사장을 휘돌아가면서 동해와 만나는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앞에는 만경창파가 빙옥처럼 펼쳐져 있고, 뒤에는 천년 세월을 이긴 송림들이 망양해수욕장의 은모래 빛을 받으며 고적하게 서 있다. 그리고 그 중간지점에 울연한 소나무 사이로 아스라이 보이는 정자 하나가 있으니, 바로 관동별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망양정이다.

천근을 못내 보와 망양정의 올은말이/바다 밧근 하늘이니 하늘 밧근 므서신고,
갓든 노한 고래 뉘라셔 놀내관대/블거니 쁨거니 어지러이 구난디고.
은산을 것거 내여 육합의 나리난 듯/오월 장천의 백설은 무사 일고.





금강산에서 시작된 정철의 관동별곡은 울진의 해변 언덕에 자리한 망양정에서 마침내 그 절창을 마치게 된다. 숙종이 관동팔경을 그린 그림을 보고 난 후 가장 낫다고 하여 친히 ‘관동제일루’라는 편액을 하사한 망양정. 사실주의의 대가이자 진경산수화풍을 창안한 겸재 정선이 두 폭의 그림을 남긴 망양정에서 정철은 길고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송강은 고래처럼 노한 모습으로 흰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를 보면서 5월 하늘에 흰 눈이 내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은산을 깎아서 나온 부스러기가 온 세상에 흘러 은빛이 분분히 날린다고 표현했다. 직유와 은유가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관동별곡의 묘미가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관동별곡은 한민족의 곱디고운 언어가 아름다운 금수강산과 어우러져 빚어진 한 폭의 거대한 수묵담채화인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의 망양정은 예전 송강과 김시습, 숙종이 찬양한 그 망양정이 아니다. 정선이 하염없이 경치를 응시하다가 마침내 화폭에 점 하나를 찍으면서 그려낸 그 망양정이 아니다. 깎아지른 해변 언덕에 위태롭게 서 있다가 가끔씩 지나가는 흰 돛단배들에게 그리움의 손길을 보내던 그 망양정이 아니다.






원래의 망양정은 기성면 망양리 해변언덕에 세워져 있었다.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티끌 한 점 없이 펼쳐져 있고, 그 망망대해를 오가는 어선들과 갈매기들이 멀리서 정자를 손짓하던 곳이었다. 정선이 담아낸 망양정의 옛 모습은 적어도 이러했다. 그러나 철종시대에 옮겨진 현재의 망양정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은빛 조각들이 날리는 파도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기 힘들다.

그러나 옛 모습의 망양정이 아니라 해도 현재의 망양정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훌륭하다. 태백산맥에서 발원한 왕피천에는 성류굴의 단아한 봉우리가 담겨 있다. 왕피천의 발걸음은 망양정으로 다가올수록 점차 느려져서 작은 호수를 하나 만드는가 싶더니 마침내 동해로 슬며시 잠기게 된다. 그 묘려한 모습을 보고 시심에 젖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망양해수욕장의 모래밭은 미인의 나신처럼 황홀하고, 흰 연꽃처럼 떠오르는 명월은 情人의 얼굴처럼 해맑기만 하다. 송강은 유하주를 가득 부어 달에게 물었단다. “영웅은 어디 갔으며 사선은 누구이더냐. 아무나 만나 보아 옛 소식을 묻고자 하니 선산 동해에 갈 길이 멀기도 멀구나.”






참으로 아쉽게도 송강은 망양정에서 달과 유하주를 나눈 후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조금만 더 내려가서 관동팔경의 마지막이자 망양정과는 또 다른 멋을 지닌 평해의 월송정을 들렀으면 좋았으련만. 만일 그가 월송정에 들렀다면 관동별곡에는 천하의 명승지가 모두 포함되었을 것이다. 아마 송강은 마음 한 구석에 월송정에 대한 그리움을 곱게 간직하면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송강은 망양정에 꼿꼿이 앉아 명월을 바라보며 선정에 대한 포부를 밝히다가 소나무 뿌리를 베고 누워 선잠에 빠진다. 꿈속에서 그는 자신이 신선이었으며 황정경 한 글자를 잘못 읽어 인간 세상에 귀양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꿈속에서 신선을 만나 북두칠성과 같은 국자를 기울여 향기로운 술을 대작한다. 그리고 이 향기로운 술로써 백성들을 다 취하게 한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후, 옥피리를 불며 학을 타고 날아가는 신선을 배웅한다.

그때 그는 보았다. 깊이를 모르는 바다위에, 온 산과 촌락 위에 희디 흰 달이 교교하게 빛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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