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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부산 중앙동의 명물, ‘바보 점쟁이’

- 어리숙하게 생긴 용한 점쟁이

'바보'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또 우리가 어릴 때 쓰던 의미로는 입을 헤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비실비실 웃고 다니면서,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우리는 '바보'라고 했다.

이 바보라는 말의 어원이 또 재미있다. '밥+보'에서 'ㅂ'이 탈락된 형태로 되면서 '바보'가 되었다는 것인데, '보'는 울보, 겁보, 느림보와 같이 사람을 나타내는 말에 해당된다. 따라서 바보란 말의 원래 의미는 밥만 먹고 하릴없이 노는 사람을 가리키며, 그런 사람을 경멸하여 현재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나 멍청이를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 '밥통'이라는 속된 표현이 이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바보'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선천적인 바보, 후천적인 바보, 의도적인 바보, 상황에 의한 바보, 그리고 명예로운 바보 등등. 때론 꼭 병이나 미치지 않더라도 '어리버리'하거나 상식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바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은 누구나 한 번씩 바보가 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랑에 빠졌을 때이다. 이때 바보의 의미는 아무 생각이 없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사랑에 눈 먼 상태에서는 오로지 상대방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사랑의 바보가 되는 것이다.

부산시 중앙동 지하 전철역에는 지하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각종 잡화에서부터 다기류, 수묵화, 장난감, 술집과 음식점 등이 길게 줄지어 있다. 그리고 이 지하상가 한 쪽 귀퉁이에는 아주 용하면서도 복채가 싼 '점쟁이'가 오래 전부터 길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점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이가 몇 살인지 알 수 없는 그 점쟁이가 '바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복채는 천원이고 2천원이고 주는 대로 받는다고 하니, 참 신기하고 어이없는 점쟁이임에 틀림없다.

부산 지하철이 들어선 지가 20년이 넘었으니, 이 점쟁이가 거의 비슷하게 근무(?)했다는 것이 근처 상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사실 나는 이 점쟁이에 관한 이야기를 10년 전에 집사람에게서 처음 들었다.

나 하고 결혼하기 전에 집사람은 평범한 직장여성이었는데, 직장 동료나 친구들 하고 가끔 '바보 점'을 보러 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중앙동 전철역 근처에 가면 진짜 바보처럼 생긴 사람이 있는데, 아주 싼 복채에 비해서 꽤 높은 적중률(?)을 자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싼 맛에, 또 미래에 자신을 데려갈 낭군이 누가 될지 궁금해서 가끔 그 사람에게 점을 봤다는 것이었다.

지면상 그를 대놓고 '바보'라고 부르는 것이 다소 미안하긴 하지만, 이미 그가 '바보로서 점을 치는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의 사실로 굳어졌고, 또 '바보가 아니라면 결코 점쟁이를 못하기 때문에' 그를 편의상 '바보 점쟁이'라고 불러야겠다.

이 사람은 그 인상이 다소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 바보의 대명사가 '초점 없는 눈동자'인데 이 사람의 눈동자는 조금 흐리마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행동도 다소 굼뜨고 조금 어색한데, 신기한 것은 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 거침없이, 속사포처럼 이야기하는 순발력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내가 쳐다보는 가운데 어느 부인네가 원양어선 선원인 남편의 안위를 물어보고 있었는데, 남편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고 남편의 어디가 아프네 마네, 언제 집에 오네 하며 거침없이 쏟아 붓는 것이었다.

그 부인네와 그의 대화는 처음부터 반말로 시작해서 반말로 끝나는데, 두 사람의 대화는 한마디로 말해 전혀 가식이 없는 진실과 소박, 솔직함이었다. 그리고 10분간에 걸친 짧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점쟁이는 복채가 3천원이라고 말한다.




부인네가 돈을 주자, 어디론가 훌쩍 가버리고 만다. 내가가 뭐라고 물어보기도 전에 말이다. 옆의 상인에게 물어보니, 늘 상가 안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고 한다. 물론 자기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결국 나는 '바보 점'을 보지 못하고 귀가해야만 했는데, 귀가하면서 이 땅에 명멸해간 무수히 많은 국내 바보와 외국 바보가 끊임없이 생각났다. 영화 <샤인> <포레스트 검프> <레인맨>에서 볼 수 있었던 순진하면서도 아름다운 '바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을 안겨주지 않았던가.

어쩌면 우리 모두는 차라리 '바보'가 될 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남을 속이고, 짓밟고, 무너뜨려야만 자신이 산다는 숨 막히는 경쟁사회에서,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하게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는 '바보'들이 많아야, 이 사회는 밝고 건강하게 유지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의 생산도구라야 간이 플라스틱 의자와 사주, 관상이라고 쓰인 종이가 유일하다. 붓도, 먹도 없이 오로지 입 하나로 점을 보는 그 '바보 점쟁이'의 질박한 모습이 오래도록 뇌리에서 잊혀 지지 않는다. 나도 때론 바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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