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명물, 동굴술집에서
무더운 여름이다. 조금만 걸어도 온 몸에서 땀이 후줄근하게 배어 나온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보지만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밤이라고 무더위가 수그러들지도 않는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이렇게 덥고 짜증날 때 생각나는 그 무엇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뼈 속까지 얼리는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이다.
그런데 이왕이면 찬 기운이 절로 스며 나오는 동굴에서 이 막걸리를 마신다면 그 얼마나 시원할까? 조금만 앉아 있어도 다리 아래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동굴 술집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 이 동굴술집을 부산 동구의 좌천동이라는 곳에 가면 2군데나 만날 수 있단다. 섭씨 30도의 무더위를 비웃기라도 하는 서늘함을 안겨주는 곳이란다.
부산을 한자로 쓰면 '釜山'이라고 하는데 이 '釜'자는 가마솥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부산의 원래 지명은 부산포(富山浦)였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점차 흐르면서 '솥'을 의미하는 '富'자가 가마를 뜻하는 '釜'로 바뀌어 '釜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부산은 동평현에 있으며 산이 가마를 닮은 형국이고, 그 아래를 부산포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즉 원래 부산은 지명이 아니라 산의 이름이라는 것인데, 이 산은 증산이라는 곳으로 현재 동구 좌천동에 있으며 임진왜란 전부터 부산진성이 구축되어 있었던 곳이다.
좌천동의 마을 어른들은 지금도 이 증산을 시루산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이 시루산이라는 말은 가마산이라는 말과 동일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가까운 자연지형을 생활에 밀접하게 쓰이는 도구와 연결시킨 민중들의 소박한 해학성은 여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지하철 1호선 좌천역에서 내려 일신기독병원으로 가는 골목으로 접어들면 높직한 계단 위에 정공단이라는 예스러운 건물이 하나 나온다. 정공단은 임진왜란 때 고니시의 1군을 맞아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정발장군을 모신 단인데, 현재 설치되어 있는 곳이 예전 부산진성의 남문자리라고 한다. 동굴술집은 이 남문자리를 지나 50m 정도 가면 만날 수 있는데,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서로 원조라고 주장하는 두 술집의 간판이다.

'구동굴집'이 있는가 하면 '원조 동굴집'이 있다. 간판 이름만으로는 '원조 동굴집'이 일단 눈길을 끈다. 원조라고 하지 않는가? 원래 '원'자에 조상 '조'자를 쓴 것을 보니 분명 이 동굴 술집이 먼저 똬리를 튼 것이 분명하다. 해서 우선 이 집에 들어가서 간단히 목을 한 번 축이기로 했다.
"할머니, 여기 막걸리 한 잔 주세요."
"한 잔을 우찌 파노? 한 주전자는 팔아야지."
"그럼 한 주전자 주소."
"두 주전자 주면 안 되나?"
"하하, 그럼 세 주전자 주세요."
"그냥 한 주전자만 해라."
늙으신 할머니 등 뒤로 웃음꽃이 핀다. 동행한 지인은 할머니와 내가 노는 양이 그저 정겹고 투박한지 벙긋 입을 벌리며 헛웃음을 날린다. 참 신기한 곳이다. 밖은 3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인데, 이곳에는 그저 시원한 냉기의 향연뿐이다. 어찌 이리도 시원할 수가 있을까? 불과 10여m도 되지 않는 동굴 안은, 사람들을 물 빠진 꼴뚜기처럼 만드는 바깥 기운을 비웃듯 겨울 유리 같은 냉기를 철철 흘린다. 도원선경이 따로 없으며 몽유도원이 바로 예인가 하다. 동동주 술타령에 해는 뉘엿뉘엿 자태를 감추고 할머니의 견대팔에 핏줄이 척척 늘어지면서 막걸리는 오늘도 잘도 익어간다. 그저 술추렴이나 할 수밖에.
이곳 동굴집의 유래는 지금도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일제 시대 때 일본인들이 탄약 저장고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만들었다는 설에서부터 자연스레 만들어진 동굴이라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전설이 전해 올 뿐이다. 원조 동굴 할머니에게 이 동굴의 유래를 물어보니 적어도 100년은 넘을 거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걸 어찌 아시느냐고 물어보니, 당신께서 20년 전에 이 동굴 술집을 임차하기 위해 서류를 떼어봤는데, 그때 이 술집의 지번이 형성된 날짜가 그 당시에만 벌써 80년 전이라고 나와 있다고 했다. 어이쿠, 그러면 1905년인데 그 당시 일인들이 무얼 하려고 이 동굴을 팠단 말인가? 결국 필자의 추측으로는 이 동굴은 자연스레 형성된 동굴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동굴을 인위적으로 파헤친 흔적은 별로 없었으며 1905년은 막 한일합방이 되던 해인지라 일인들이 굳이 동굴을 팔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그 누구도 모른다. 그에 관련된 자료도 별로 없다. 그저 동굴이 있을 뿐이며, 그 안에 들어가 땅 속에서 울려 펴지는 시원한 기운에 술만 마시면 된다. 그게 그냥 정답이다.
한창 막걸리를 마시다 보니 폭폭 찌는 바깥으로 나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변소에 간답시고 밖으로 나갔던 지인이 후닥닥 들어오며 손사래를 친다.
"마, 그냥 여기서 살자."
"그러면 정말 좋겠네. 허허."
정겨운 이야기 속에 우리의 술추렴은 끝이 나고, 아쉬운 맘 서러운 맘 뒤로 하며 동굴술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가니 훅 끼치는 더운 열기에 그저 얼굴이 찡그려진다. 휴, 여름철에는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