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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감동의 시간 -이틀(남북교육자 상봉 후기)

새벽 4시 30분에 기상을 하였다. 뿌연 안개 속에 매미 소리와 함께 새벽은 터지고 대동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있건만 강물위에 떠다니는 배 보이지 않으니 한가롭기만 하다. 양각도 호텔에서 내려다 본 새벽은 하늘을 찌를 듯 피라미드처럼 뾰족하게 쌓아올린 105층의 검은 유경호텔과 조금 떨어진 쌍둥이 빌딩 그 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빌딩들은 안개 속에 죽은 듯이 고요하기만하고 간간이 그 옛날 내가 듣던 참매미 소리만 들려온다.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두 개의 굴뚝에서 그림과 같이 연기만 피어오른다. 그 너머의 머나먼 곳으로 연기인지 안개인지 피어오르는 저 뒤편에는 완만한 산이 섬처럼 고즈넉이 누워있다.

우리가 왔던 순안 공항으로 가는 길이 눈에 익은 것이 왔던 길로 그대로 되돌아가는 길임을 알 수 있었다. 지난밤에 비가 온 탓인지 장화를 신고 우산이나 우의를 입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출근길임을 느낄 수 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우산과 우의를 준비하여 순안공항에서 삼지연 공항으로 가기위해 비행기에 탑승을 하였다. 아무래도 비 때문에 오늘 백두산 천지를 볼 수가 없을 것 같아 마음을 졸이게 하였다. 평양에서 삼지연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평양맥주, 포도주, 배단물, 사이다, 신덕샘물과 과자는 비스켓 종류가 제공되었다. 공공장소에는 언제나 슬프고 애잔한 노래가 빠짐없이 들려온다. 공항, 판매소, 비행기 안 등 공공장소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처음에는 신기하게 들렸으나 계속 듣게 되니 면역이 되었는지 당연한 것처럼 인식이 되었다.

비행기 안은 약간 좁고 시설이 낡은 편이었기에 우중의 운행으로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다. 백두산 삼지연 공항 가까이 다다르니 맑은 햇빛을 볼 수 있어서 천지를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기에 충분하였다. 민족의 정기가 스며있는 맑은 백두산천지를 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리이까. 내려다 본 산하는 우거진 침엽수림으로 이국적인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는 소리로 바뀌고 있음을 느끼며, 도착한 1,300m 고지의 삼지연 공항은 그야말로 시골 읍내 학교에 온 기분이 들었다. 외부인 이라고는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 손님 밖에 없었다. 스물 대여섯 명 남짓 탈만한 버스가 다섯 대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다. 이곳에서 백두산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은 침엽수림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좁은 길로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지나며 많은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작업복 차림으로 등에는 둥근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사람, 트럭에 빼곡히 인민군들이 타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옆에 앉은 안내원한테 물어보니 민족의 영산이며 김일성 주석의 혁명 흔적을 체험하면서 많은 군인들이나 학생들이 백두산 순례를 한다는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잎깔나무, 자작나무, 삼나무의 숲으로 자연림으로 빼곡히 들어찬 나무들을 보면서 어마어마한 숲으로 한 없이 이어진 침엽수림은 우리의 기분을 더욱 상쾌하게 하였다. 아래쪽에는 나무의 둥치가 작았지만 위쪽으로 갈수록 더 큰 나무들을 볼 수가 있었고 거의가 한 가지 수종으로 키 자랑이라도 하는 양 쭉쭉 뻗은 나무들로 끝없이 펼쳐지는 모습에 마냥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까지 하였다.

백두산을 오른다는 개념으로 차를 타고 갔지만 오른다는 느낌 보다는 평평한 길을 계속 가는 듯 하였다. 한참을 가다가 밖을 보니 나무의 둥치도 굵고 키도 작아지면서 드문드문 나무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고원과 같은 능선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달리는 차량 밖 길가에는 아름다운 야생화가 밤하늘의 은하수를 연상하듯 수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토질을 언뜻 보아도 척박한 화산사토에 왜 그다지도 다양한 종류의 아름답고 멋진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지 내 어릴 때 한산한 봄날을 연상케 한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어도 별천지처럼 흩어 뿌린 야생화에 여기저기서 탄성의 소리가 들린다. 백두고원에서 맘껏 뽐내며 반겨주는 야생화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여자 안내원이 이동 중에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자 더욱 아쉬움은 컸다. 올라갈수록 몽골고원의 풍경을 연상하듯 끝없이 펼쳐진 백두고원의 모습에 저절로 막혔던 가슴이 뚫리는 듯 하였다. 원래는 마지막 주차장에서는 더 이상 버스를 타고 가지 못하도록 되어있지만, 일정이 바쁜 관계로 거의 백두산 정상가까이에 있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내리자마자 민화협 안내원이 오늘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는 멋진 날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고대하던 백두산에서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다급한 마음으로 내려다 본 천지는 변화무쌍한 기상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짙푸른 쪽빛 물위로 물안개는 신비한 천지창조의 화면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밝고 어두운 부분이 교차하면서 펼쳐 보이는 구름은 스크린에서 구름의 무궁무진한 조화를 보여주듯 맑고 흐림의 변화를 연신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이곳이 말로만 듣던 백두산 천지! 우리 민족정기가 살아 숨쉬는 듯 말할 수 없는 감회와 그동안 사진이나 그림으로 보아왔던 바로 그 천지가 눈앞에 운무로 피어오르며 펼쳐지니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들어 환호를 질렀다. 사진 찍는 것조차도 아까운 시간이었다. 백두산 사적비 주위에서 사진을 연신 찍고 있는데 장군 봉에 가면 더욱 백두산 천지를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천지를 더 잘 볼 수가 있었고 날씨는 아까보다도 더 맑아지면서 잘 보이게 되어 변화하는 신비한 천지의 모습을 넋을 놓고 찍다가 보니 벌써 장군봉에 들렸다가 내려온다. 장군봉까지 올라 와서 내가 살펴보고 싶었던 곳에서 천지를 보지 못하여 아쉬웠다. 딱 한 번만 얼른 보고 온다고 간곡히 간청을 하였지만 어림없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안 이야기이지만 누군가가 장군봉에 올라 너무 급한 김에 실례를 하다가 안내원 눈에 띄게 되어 바로 내려가라는 독촉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민족의 정기가 스린 장군봉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였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북한에는 화장실이 너무 부족하다. 화장실이 눈에 띄는 대로 해결을 하고 가야지 잘못하면 곤욕을 치를 수가 있다. 대체적으로 화장실이 멀고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였지만 사용할 수 있는 수량이 적어서 항상 줄을 서고 대기를 하여야 하는 어려움을 겪은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촌음을 다투는 시대에 멀리 떨어져 있는 좁은 화장실은 시급히 개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백두산에서 백두밀영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이국적인 풍경이다. 멀리 능선을 따라 펼쳐진 모습이 고원을 연상케도 하지만 내려오는 길이 흐드러진 야생화와 백두산을 배경으로 너무나 목가적인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오는 길에 점심을 백두산의 아름다운 초원에서 먹게 되었다. 하얀 천을 깔고 함께 둘러앉아서 먹는 음식은 오랜만에 초등학교 소풍을 와서 먹는 기분이었다.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야생화들이 가득하여 멀리 보이는 백두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산천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곳 야외 판매대에는 약초와 그림을 직접 판매를 하는데 옥류민예사 창작 2급인 전도있는 조선인 창작가가 직접 판매를 하여 나도 백두산 호랑이 그림을 한 점을 샀다.

백두밀영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이곳은 김일성 수석이 일제식민지시대 항일운동으로 빨치산 활동을 하던 곳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태어난 곳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비밀 영지로 김일성 수석이 빨치산 부대를 운영하던 집무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태어난 곳으로 그 당시 가재도구 놀잇감, 김정숙 부인과 가정살림을 하던 곳 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머리를 들어 쳐다보면 절벽으로 깎아 세운 듯 산봉우리에 정일봉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에 글씨를 새겨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바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안내원은 돌의 크기와 글씨의 크기, 돌의 운반은 비행기로 옮겨서 새겼다며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으나 아름다운 자연을 대대로 보존해야한다는 차원에서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민족의 훌륭한 선조들이 많았음에도 지금껏 아름다운 명소에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그렇게 거대한 사업을 한일이 없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삼삼오오 또는 단체로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답사를 하러 사람들이 꾸준히 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특히 유격대 복장을 하고 검은 피부에 많은 훈련을 하고 온듯하며, 그들은 안내원의 안내에 열과 행을 맞추어 얼마나 진지하고 부동자세로 듣는지 신기하기만 하였다. 아마 남측 교원들의 듣는 태도에 무척 기분이 나빴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들은 정신무장 강화를 위해 소 중 대 규모로 지금도 전쟁 시와 다름없이 위대한 업적을 본받기 위해 체험활동으로 답사를 하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백두밀영을 참관하고 내려오는 중에도 계속하여 올라오는 북한주민들은 학생, 군인, 주민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항일 전투의 위대한 정신과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정신무장을 위해 참배하는 북한 주민들을 보고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백두밀영에서 가까이 김일성 수석의 거대한 동상 기념물을 전시한 곳으로 가게 되었다. 이곳은 삼지연 기념탑으로 만수대의 김일성 수석 동상보다는 작은 규모의 동상이지만 넓은 터에 동상을 배경으로 군상이 여기저기 예술품의 멋을 한껏 자랑하며 서 있다. 거기에는 김일성 부자의 조국 귀향환영 군상과 다양한 주민들이 선군을 위한 군상 및 조국통일을 위해 진군나팔을 불며 진두지휘하는 군상 등을 볼 수 있다. 삼지연 기념탑은 김일성 수석이 백두산을 배경으로 삼지연 주위의 쌍가지 벚나무 앞쪽에 위치선정과 손수 지휘하여 건설을 하고, 완공 후에 이곳에 와서 군상을 살펴보며 표현이 잘 되었다는 칭찬을 받은 곳이라 한다. 삼지연은 백두밀영과 가까운 위치에 성역화 함으로써 북한에서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힘써 왔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조선말에 쇄국정치로 인하여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의 교류 부재로 인해 후진국으로 세계 열강제국들의 핍박을 받아왔음을 잘 알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이치를 그들이 모르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과연 나는 여기서 무엇을 느끼고 얻었는가? 또 통일을 어떻게 해야 하며 분단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돌아오는 길에 착잡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나와 이웃, 우리민족, 조국이 남북통일을 하여 제대로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것인지 묻고 또 물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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