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전역에서 월내역까지의 작은 여행
승용차다 지하철이다 해서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은 이제 먼 옛날 일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부산에서 통근열차가 운행되는 곳이 있다. 예전에는 통일호라는 다소 무거운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파스텔톤의 연하늘색 페인트로 칠해진 기차가 통근열차(혹은 동차)라는 이름으로 아침저녁 하루 두 번씩 부전역에서 월내역으로 운행하고 있다.
통일호가 열차 이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55년이라고 한다. 1899년과 1906년 각각 개통된 경인선과 경부선의 열차는 시속 20~40㎞정도의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1936년에는 시속 60㎞의 특급열차인 히카리(光ㆍ부산-만주)호가 등장하였는데, 이 열차는 해방 이후 조선해방자호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통일호는 이 조선해방자호가 다시 개명된 것인데, 당시만 해도 통일호는 최고 속도와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열차였다.

이후 최신식 열차들이 속속 등장하고 84년 철도청의 열차 명 개명과 함께 새마을_무궁화에 이어 보통열차로 내려섰다가 2000년 완행인 비둘기호가 퇴역한 뒤 꼴찌등급으로 강등된 것이다. 전국 65개 노선, 636개 역을 누벼 온 통일호는 고속철도의 등장과 함께 거의 퇴출되고 통근열차라는 이름으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동해남부선은 부산진에서 포항 간을 잇는 철도였다. 최초로 개통되었을 때의 총길이는 147㎞ 였으며, 처음 부산진에서 해운대 구간이 먼저 개통되고, 그 다음에 해운대∼좌천 간 22.3㎞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좌천∼울산 간이 차례로 개통되었다고 한다. 이 동해남부선 구간이 이제는 확장되어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인 정동진과 강릉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부전역에서 월내역으로 가는 통근열차는 이 동해남부선 철로를 이용하여 채 50분이 걸리지 않는 빠른 시간을 자랑한다. 부전역에서 해운대역까지는 지하철을 이용하면 42분이 걸리고, 버스로는 근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이 통근열차를 타면 불과 19분밖에 안 걸리니 그 편리함이야 말해서 무엇 하리. 더군다나 잠시나마 도시속의 작은 여행를 한다는 묘한 기쁨은 당하지 않고서야 정녕 모를 것이다.
부전역 근처는 부산 지역 최대의 시장인 부전시장이 들어서 있는데, 자갈치 시장이 수산물로 유명하다면 부전시장은 건어물, 건약재와 각종 야채, 과일도매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예전에는 새벽에 월내와 송정, 해운대에서 각종 보따리를 이고 진 농민과 어부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이 기차를 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새벽에 물건을 이고와 부전시장에서 다 판 민초들은 다시 오후에 이 기차를 타고 두둑해진 지갑을 안고서 귀가하곤 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 민초들의 지난한 삶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통근열차로 변모하였지만, 아직도 이 기차에서는 아련한 추억의 모습들이 풍겨 나온다.

특히 해운대역에서 송정역으로 넘어가는 곳에서는 탁 트인 바다 풍경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다. 새벽이면 동해의 일출에 취할 수 있고, 오후 나절이면 바다를 오렌지 빛으로 물들이는 석양의 황홀경을 볼 수 있어 사랑과 낭만을 즐기기엔 더 없이 좋은 장소이다. 만일 비라도 내리는 날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과 함께, 창밖으로 비치는 비와 파도, 그리고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들을 듣는다면 그보다 더 낭만적일 수가 없을 것이다.
동해 남부선에서 말 못할 그리움과 애잔함, 그리고 마음 한 구석을 텅 비게 하는 여백의 미를 오래도록 감상하기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착역인 월내역 앞의 낡은 다방에서 늙은 마담과 함께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빼먹지 말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