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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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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선생님은 위로자이다

태풍의 계절인가 보다. 엊그제 태풍이 하나 휩쓸고 지나갔는데 복구가 채 되기도 전에 또 태풍이 지나간다고 하니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주눅들게 만든다. 큰 피해 없이 지나갔으면 한다. 아무리 태풍이 와도 흔들림 없이 잘 대비하고 잘 복구하고 했으면 한다. 그러면 태풍도 얌체가 있어 피해가거나 스스로 풀이 꺾어 소멸되지 않을까 싶다.

어제 한 2학년 여학생이 교장실에 찾아 왔다. 개인의 문제를 두고 교장실에 찾아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학생은 1학기 때 무단가출을 하여 장기결석을 한 학생이었다. 방학하기 전 담임선생님과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이 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한번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더니 애에게 연락이 됐던지 방학 전에 교장실에 왔었다. 그 애에 대한 이야기를 사전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구체적으로 들어보니 말이 아니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고 별도로 혼자서 집을 나가 생활하고 있으며 집에는 할머니와 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데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고 할머니의 구박에 못 이겨 집을 나가 방황하다가 쉼터에서 임시 생활터전으로 지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집에 있을 때 한 달에 만 원을 잡비로 주며 할머니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꾸중을 자주 하곤 했었고 아버지는 간혹 한 번씩 연락이 와 저녁을 사 주곤 한다고 했다.

처음에 그 학생을 만나 보니 사람을 무서워 하는 것 같았고  불안과 초조한 가운데 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 시원스럽고 자연스럽게 말을 하였다. 나름대로 위로하고 격려한 후 집에 들어와서 학교에 잘 다닐 수 있도록 권했었다.

이 학생이 최근에 나를 볼 때마다 ‘아무개예요’ 하면서 인사를 하였다. 얼굴이 굉장히 밝아보였고 생기가 돌았다. 얼굴에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 학생에게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모를 리 없었다. 반갑워 이름을 불러주면서 시간이 있으면 교장실에 한번 오라고 했었는데 어제 온 것이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고 친하게 해 주면서 교장실에 한번 오라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교장실에 왔을 때 차를 한 잔 나누면서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내가 아버지처럼 보살펴 주겠다고 했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나아가라고 했다. 현재 내가 있는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내가 어느 곳으로 가고 있나가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많이 놀았을 터인데 이제부터는 대나무처럼 기초를 잘 쌓으라고 했다. 대나무의 특성은 4년 동안은 죽순만 보이고 뿌리만 내리는데 5년째는 순식간에 25미터로 자란다고 하면서 기초공부를 잘 해놓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밝은 표정으로 나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계속해서 반듯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표정도 밝고 건강한 모습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이 학생을 보면서 우리 선생님들은 진정 위로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급에는 이와 유사한 학생들이 많이 있으리라 본다. 담임 업무가 너무 많아 대충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애들을 잘 다독거리고 보살펴 놓으면 나중에 성장하여 자기를 진정으로 위로해 준 담임선생님을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릴 것 아니겠는가?

우리 앞에는 핑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너무 바쁘다는 둥, 너무 힘들다는 둥, 날마다 살갑게 굴순 없다는 둥, 매일 잔소리를 해야 하는 둥, 할 일이 많다는 둥 핑계를 대다 보면 끝이 없다. 아무 보람된 일도 할 수가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나름대로 여러 가지 가정 형편으로 인해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예사로이 넘기지 말고 나름대로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보람에 보람을 더할 것이다.

선생님은 위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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