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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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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강마을 편지> 낙엽끼리 모여 산다

가을이 저만큼 성큼성큼 큰 걸음을 걸어서 가고 있습니다. 겨울이 금새라도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할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투명한 레이스 자락을 펼친 듯 하얀 서리가 내린 들판 사이로 햇살이 눈부십니다. 빠알간 화살나무 잎의 가장자리에 흰 서리는 수를 놓은 듯 곱습니다.



어제는 학교의 화단 가장자리에서 말라가던 칸나를 베어내었습니다. 저는 이번 주 도우미 교사여서 아이들과 함께 수레에 칸나 줄기를 실어 쓰레기장에 가져다 버렸습니다. 해바라기 마른 줄기도 함께 정리를 하였습니다.

가을 저녁 무렵 비스듬히 넘어가는 햇살 사이로 이따금 노란 은행나무잎이 날아와서 금방 쓸어 놓은 길을 다시 어질러 놓습니다. 저는 이 가을걷이를 하듯 그렇게 하는 화단의 정리가 참 좋았습니다. 아직은 푸른기가 조금 남은 칸나의 줄기와 해바라기 마른 줄기에서는 짙은 가을 냄새가 배어있습니다. 짙은 커피향 같기도 하고, 묵은 메주냄새 같기도 한 뭐라 말할 수 없는 깊은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발밑에 밟히는 마른 잎의 소리와 감촉도 참 좋습니다. 긴 대나무 빗자루로 학교 진입로에 뿌려진 플라타너스의 커다란 잎사귀를 쓰는 것은 제가 즐기는 가을의 일과입니다. 새잎도 좋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잊어버린 듯 그렇게 미련 없이 떨어지는 가을잎도 참 고맙습니다. 그래야 그 자리에 새잎을 꿈꾸고 눈부신 봄꽃을 기약하기 때문이겠지요.

우수수 바람이 불어 운동장을 딩굴던 플라타너스 잎새를 한 구석으로 몰아 놓습니다. 길모퉁이엔 온통 바람이 데려온 낙엽들이 모여 있습니다. 낙엽은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도 낙엽끼리 모여서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그 구절이 낯이 익습니다. 조병화님의 ‘낙엽끼리 모여 산다’ 란 시의 한 구절입니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조병화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낙엽은 낙엽끼리 모여 살 듯 우리 범상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비비고 체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우수수 아직 몇 장남은 잎새들이 삽상한 바람에 날립니다. 바람이 몰아가는 마른 잎 사이로 통통 뛰어가는 아이들의 발소리와 빨갛고 노란 웃음소리가 불을 켜는 겨울의 저녁 무렵입니다.

날씨가 차가와졌습니다. 감기 조심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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